<詩 휴게실>/詩의 오솔길
여치 소리를 듣는다는 것(안도현)
머루랑
2008. 8. 6. 20:08
<여치 소리를 듣는다는 것/안도현>
요 며칠 사이에 우리집에는 작은 소동이 두 번 일었다.
한 밤중에 참매미 한마리가 날아들어 놀라게 하더니
어제 아침식사 때에는 귀뚜라미 새끼 한마리가
또 날아와서 법석을 떨었다.
<몸은 작은데 어찌나 점프력이 좋은지 한번 뛰면 어디로 갔는지 발에 밟힐까봐 한참을 찾아야 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떨어져 앉아 우는 여치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여치소리가 내 귀에 와닿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는 것
그 사이에 꽉 찬 고요 속에다 실금을 그어놓고
끊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것
밤낮으로 누가 건너오고 누가 건너가는가 지켜보는 것
외롭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입밖에 꺼내지 않고
나는 여치한테 귀를 맡겨두고
여치는 나한테 귀를 맡겨두는 것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오도카니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여치의 젖은 무릎을 생각한다는 것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 안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