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봄, 여름 詩

꽃잎은 흩날리는데...

머루랑 2009. 4. 11. 14:36

 <복사꽃 흩날리는/김윤배, 봄/이성부, 라일락 그늘에 앉아/오세영, 묏버들 가려 꺽어/

   홍 랑, 山에 언덕에/신동엽, 새소리에 지는 꽃/도종환> 

 

 이제는 헐거운 마음으로 저 연분홍 꽃잎 가장자리 밟으며

 

 

<복사꽃 흩날리는/ 김윤배>

 

오래된 몸 서러운 색깔로 물들이는

복사꽃잎, 연분홍에서 진분홍에 이르는

첩첩한 꽃길, 젊은 날 그 길을

그토록 두려워 떨며 걸었던 것이다

한 세상 여는 일이

세미하게 채도 다른

꽃잎 밟는 일인 것을

꽃잎 밟을 때마다 숨 멎는 줄 알았던

묵시의 시간들은 아팠다

 

이제는 헐거운 마음으로

저 연분홍 꽃잎 가장자리 밟으며

바람 느릿느릿 지나는 조치원에서

 한나절 보낼 수 있겠다 복사꽃잎

  흩날리는 아름다운 적소 황홀한

 꽃길의 자락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라일락 그늘에 앉아/ 오세영>

 

맑은 날,

네 편지를 들면

아프도록 눈이 부시고

흐린 날,

네 편지를 들면

서럽도록 눈이 어둡다

아무래도 보이질 않는 구나

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한 줄,

무슨 말을 썼을까.

 

오늘은

햇빛이 푸르른 날,

라일락 그늘에 앉아

네 편지를 읽는다.

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

무슨 말을 썼을까.

날리는 꽃잎에 가려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그

한 줄.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임에게 ...

 

 

<묏버들 가려 꺽어/ 홍 랑>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만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 날 지어니.

 

 

<山에 언덕에/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 날 지어니.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 갈 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 날 지어이.

 

 

 

 

 

  어제는 바람 때문에 꽃 지더니 오늘은 세소리에 꽃이 지누나

 

 

 

 

 

<새소리에 지는 꽃/ 도종환>

 

어제는 바람 때문에 꽃 지더니

오늘은 세소리에 꽃이 지누나

 

매화꽃 떨어진 위로

바람소리를 잘게 잘게 썰어서

내려 보내는 새 몇마리

 

기와지붕 수막새 사이 오가며

그네처럼 목소리 흔들어

땅에 보내는 새 몇마리

 

어제는 바람 때문에 꽃 지더니

오늘은 새소리에 꽃이 지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