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가을,겨울 時

서가(序歌)/ 이근배

머루랑 2009. 9. 6. 21:44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맑은 하늘의 한 자락을 마시는 들풀의 숨소리를 듣는다.

 

 

 

 

 

가을의 첫줄을 쓴다

깊이 생채기 진 여름의 끝의 자국

흙탕물이 쓸고 간 찌거기를 비집고

맑은 하늘의 한 자락을 마시는

들풀의 숨소리를 듣는다

금실 같은 볕살을 가슴에 받아도

터트릴 꽃씨 하나 없이

쭉정이 진 날들

이제 바람이 불면

마른 잎으로 떨어져 누울

나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과 산다는 것의

뒤섞임과 소용돌이 속에서

쨍한 푸르름에도

헹궈지지 않는 슬픔을

가을의 첫 줄을 쓴다.

 

<서가(序歌)/  이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