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푸르른 날, 그늘 속에는
<시월/ 홍해리, 푸르른 날/ 서정주, 그늘 속에는/ 양문규>
가을 길은 시월이면 싸리꽃 꽃자리도 자질자질 잦아들 때, 하늘에선 가야금 퉁기는 소리...
가을 길은 시월이면
싸리꽃 꽃자리도
자질자질 잦아들 때,
하늘에선 가야금 퉁기는 소리
팽팽한 긴장 속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머언 만리길을
마른 발로 가고 있는 사람
보인다.
물푸레나무 우듬지
까치 한 마리
투명한 심연으로, 냉큼,
뛰어들지 못하고
온 세상이 빛과 소리에 취해
원형의 전설과 추억을 안고
추락,
추락하고 있다
<시월/ 홍해리>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 하나를 그리워하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푸르른 날/ 서정주>
하늘 받든 은행나무는 안녕하신지? 햇살 푸지도록 환한 날
하늘 받든 은행나무는 안녕하신지?
햇살 푸지도록 환한 날
다시 천태산 영국사로 든다
은행나무는 낮고 낮은
골짜기를 타고 천 년동안 법음 중이다
해고노동자, 날품팔이, 농사꾼
시간강사, 시인, 환경미화원
노래방도우미, 백수, 백수들......
도심 변두리에 켜켜이 쌓여 있는
어둠이란 어둠,
울음과 울음의 바닷속을 떠돌던
사람이란 사람 모다 모였다
가진 것 없어 정정하고
비울 것 없어 고요한
저 은행나무 그늘이 되고 싶은 게지
<그늘 속에는/ 양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