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도종환,안도현,김용택

도종환의 봄詩 (하)

머루랑 2008. 12. 19. 23:20

 <다시 오는 봄// 개나리 꽃// 사월 목련// 산사 문답// 낙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오늘밤 비 내리고// 곷과 라훌라// 바람이 오면// 꽃잎// 민들레 뿌리// 내 안의 시인>  

 

 

다시 오는 봄//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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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꽃//
산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잎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이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사월 목련//
남들도 나처럼
외로웁지요

남들도 나처럼
흔들리고 있지요

말할 수 없는 것뿐이지요
차라리 아무 말
안 하는 것뿐이지요

소리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월 목련


 

 

 

 

 


산사문답//
이 비 그치면
또 어디로 가시려나

대답없이 바라보는 서쪽 하늘로
모란이 툭 소리없이 지는데

산길 이백 리
첩첩 안개구름에 가려 있고

어느 골짝에서 올라오는 목탁 소리인고
추녀 밑에 빗물 듣는 소리

 

 

 

 

 

 


 

낙화//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꽃이 돌아갈 때도 못 깨닫고
꽃이 돌아올 때도 못 깨닫고
본지풍광本地風光 그 얼굴 더듬어도 못 보고
속절없이 비 오고 바람 부는
무명의 한 세월
사람의 마을에 비가 온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밤마다 뒤척이며 돌아눕고 있구나

그대 있는 곳까지 가다가
끝내 철썩철썩 파도 소리로 변하고 마는
내 목소리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수없이 던진 소리들이
그대의 기슭에 다 못 가고
툭툭 물방울로 치솟다 떨어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대가 별빛으로 깜빡일 때
나는 대낮의 거리에서 그대를 부르고 있거나

내가 마른 꽃 한 송이 들고 물가로 갈 때
언덕 아래 가득한 어둠으로 저물던
그대와의 자전하는 이 거리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오늘도
밤마다 뒤척이며 돌아눕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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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비 내리고//
오늘밤 비 내리고
몸 어디인가 소리없이 아프다
빗물은 꽃잎을 싣고 여울로 가고
세월은 육신을 싣고 서천으로 기운다
꽃 지고 세월 지면 또 무엇이 남으리
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 기댈 곳 없어라

 

 

 

 

 

 

꽃과 라훌라//

더이상 씨앗은 뿌리지 않기로 합니다
꽃의 성불에 대한 욕심도 그만두기로 합니다
저마다의 운명처럼 슬픔도 가지고 가게 합니다
바람 소리를 바람 소리로 오게 합니다
제 앞에 놓인 산을 제 발로 넘게 합니다

오동나무꽃 떨어진 걸
오동나무가 내려다보는 저녁 어스름

 

 

 

 


 

 

 

바람이 오면//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꽃잎//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아득하여


 

 

 

 

 

 

 

 

민들레 뿌리//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 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내 안의 시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줄 몰라 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빚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 소리
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
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던 고운 사람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 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듯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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