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홍일표, 3월/목필균, 3월,그녀를 읽다/김은숙, 3월 이야기/서정우, 3월/이외수>
좁은 산길 울퉁불퉁 박혀 있는 돌들이 툭툭 발목을 잡았다
<3월/ 홍일표>
수암사 오르는 길은
갈참나무, 병꽃나무, 오리나무가
모두 입 다물고 묵상 중이었다
가장 먼저
산수유 노랗게 허공에 떠 있었다
쉬임없이 소곤소곤 종알대고 있었으나
골짜기의 물들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하산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좁은 산길 울퉁불퉁 박혀 있는 돌들이
툭툭 발목을 잡았다
줄레줄레 따라오던 잡념들은
그만 슬그머니 나를 놓아버리고,
수암사 가까이 다가갈수록
깊어지는 고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비로소 맑게 빛나는
바람소리, 새소리
고요 속에서 뭉클 내가 만져지는 순간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올랐다
황토밭 뿌리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3월/ 목필균>
햇살 한 짐 지어다가
고향 밭에 콩이라도 심어 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 할까
황토밭 뿌리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 날 연둣빛 꿈
봄밤, 몸푸는 달빛 숨에 파르르 소름 돋는 그녀
<3월, 그녀를 읽다/ 김은숙>
건조한 코드로 읽으려 해요
몇 개의 실줄 가지런한 바코드로 말이에요
황사(黃砂) 수렁으로 허물어지듯 기어들어
시커멓게 봄을 앓는 소리 묶어 귓속 미로에 몸을 틀어도
염려 말아요 달팽이 속 숨은 그림 한 손에 끄집어내어
뒤틀린 기억까지 정렬할 수 있어요
가느다란 날실(經絲) 몇 개 늘어놓아서요
무거워하지도 말아요 잠복해있는 슬픔쯤은
움푹 꺼진 가슴자리까지 말끔하게 복원될 수 있어요
고르고 아름다운 공평(公平)의 이름으로 읽어내니까요
터질 듯 머금었던 온몸 물기 벌써 다 말라버린 것 같지 않나요
불규칙한 심장 박동, 떨어지는 혈압까지 친절하게 평균치로 읽어 줄께요
봄밤, 몸푸는 달빛 숨에 파르르 소름 돋는 그녀
뿌리 내릴 자리 하나 찾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잔류했던가
<3월 이야기/ 서정우>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빛깔도 없는 한 개 풀씨로
허공 중에 점점이 서성일 때
그때 그 무서운 고요 속에서
우리에게는
뿌리 내릴 자리 하나 찾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잔류(殘留)했던가
얼마만큼의 여린 꿈들이 부서져 내렸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래 연초록 싹을 돋치고
봄날 하오. 햇살만큼 밝은 빛깔로
펑
펑
두어 줄기 깨끗한 꽃대가 터질 때까지 우리는
연신 부딪혀 오는 세월의 바람 속에서
살아남는 法도
새로운 꽃씨를 만드는 法도 배워야 한다.
한글 중에 제일 꽃을 닮은 글자는, 꽃이라는 글자 하나뿐이지요
<3월/ 이외수>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있으면
원고지 속으로 진눈깨비가 내립니다
춘천에는 아직도 겨울이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은 꽃이라는 한 음절의 글자만
엽서에 적어 그대 머리맡으로 보냅니다
꽃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이 있나요
한글 중에 제일 꽃을 닮은 글자는
꽃이라는 글자 하나뿐이지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 가득 차 있는 햇빛 때문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