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정채봉, 봄은 전쟁처럼/오세영, 상리과원/서정주, 머금다/천양희, 묵화/김종삼,
동오리/강 민>
산자락마다, 골짝마다 노란 팝콘 터지는 소리...고소한 향이 흐르는 소리~~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오늘/ 정채봉>
봄이 밟고 지나간 땅마다 온통 노란 꽃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어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융한 흐름이다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융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중략)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 하는 미물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 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상리과원(上里果園)/ 서정주>
봄바람 가지끝에 머무르니 머지않아 꽃망울 터지겠다~
거위눈별 물기 머금으니 비 오겠다
충동벌새 꿀 머금으니 꽃가루 옮기겠다
그늘나비 그늘 머금으니 어두워지겠다
구름비나무 비구름 머금으니 장마지겠다
청미덩굴 서리 머금으니 붉은 열매 열겠다
사랑을 머금은 자
이 봄, 몸이 마르겠다
<머금다/ 천양희>
투두둑 투둑! 노란 생강꽃잎, 봄 터트리는 소리...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묵화(墨畵)/ 김종삼>
이 봄의 씨앗 실어다 거기에도 뿌려 줘요~ 샘물가 돌 틈에도...
그대 바람으로 떠나요
떠난김에 훨훨 날아
산 넘고 물 건너
이 봄의 씨앗 실어다
거기에도 뿌려 줘요
샘물가 돌 틈에도
뒤울안 툇마루 주춧돌 사이에도
정자나무 그늘에 쉬는
그이들의 마음 밭에도
뿌려줘요, 봄의 씨앗
동오리의 봄 씨앗 날아
녹슨 철조망, 지뢰밭 넘어
그리로 가요
<동오리/ 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