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 십니까// 별 아래 서서// 만들 수만 있다면// 사랑을 잃은 그대에게// 혼자 사랑//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꽃다지// 흉터// 사랑업// 병//
희망// 나리소// 섬// 빈 방>
당신은 누구십니까//
<영월 판운리 섶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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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래 서서// |
<해바라기꽃>
만들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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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껍질의 노래>
사랑을 잃은 그대에게// |
<수크령>
혼자 사랑// |
<설악산 앵초>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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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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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바람 한 줄기에도 살이 떨리는
이 하늘 아래 오직 나 혼자뿐이라고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처음 돋는 풀 한 포기보다 소중히 여겨지지 않고
민들레만큼도 화려하지 못하여
나는 흙바람 속에 조용히
내 몸을 접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안 뒤부터는
지나가는 당신의 그림자에
몸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고
건넛산 언덕에 살구꽃들이
당신을 향해 피는 것까지도 즐거워했습니다
내 마음은 이제 열을 지어
보아주지 않는 당신 가까이 왔습니다
당신이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로 흘러오리라 믿으며
다만 내가 당신의 무엇이 될까만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이름이 없는 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도 가까이 계심을 고마워하는
당신으로 인해 피어 있는 꽃입니다
흉터//
한 번 크게 앓고 난 뒤부터
이 상처
지워지지 않아요
한때의 칼자국
내 살 깊은 곳에 박혀서
오래도록 남아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상처는 상처대로 안고
흉터는 흉터대로 남은 채
이렇게 살고 있어요
세월은 흐르고
흉터는 지워지지 않아도
잊은 듯 살고 있어요
<미국 쑥부쟁이꽃>
사랑업//
이 세상에는 저만 모르는 채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만 모르는 채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동안
제가 불을 붙이고
창을 열어 꺼뜨린 촛불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쌓은 선업과 악업이
사랑과 미움으로 자라는 동안
저만 모르는 채 떴다 지는
별 몇 개 있습니다
병//
마음속 불꽃이
병이 된다
가슴속 북풍이
병이 된다
불 같은 그리움
얼음 같은 외로움이
병이 된다
지나온 내 생애의
발자국마다
나로 인해 내린 비가
병이 되어 고인다
불 타며 불 타며
병이 된다
바람 불어 바람 불어
병이 된다
<골쇄보>
희망//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별이 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오는 그대를
꽃이 꽃에 닿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대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섰듯이
알맞은 시기에 그대를 떠나라 한다
그대가 있어서
소리없는 기쁨이 어둠속에 촛불들처럼
수십개의 눈을 뜨고 손 흔드는데
차디찬 겨울 감옥 마룻장 같은 세상에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 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아직도 내가 그대 곁을 맴도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 사는 동네와 그 두터운 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아궁이가 스스로 불씨를 꺼 버린 방에 앉아
재마저 식은 질화로를 끌어안고
따뜻한 온돌을 추억하는 일이라 한다
매일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는 그대를
생에 오직 한번만 만나도 다 만나는 그대를
<북한강변의 여름>
나리소// |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의 할배바위>
섬//
그대 떠나고 난 뒤 눈발이 길어서
그 겨울 다 가도록 외로웠지만
그대가 곁에 있던 가을 햇볕 속에서도
나는 내내 외로웠다
그대가 그대 몫의 파도를 따라
파도 속 작은 물방울로
수평선 너머 사라져간 뒤에도
하늘 올려다보며 눈물 감추었지만
그대가 내 발목을 감으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이었을 때도
실은 돌아서서 몰래 아파하곤 했다
그대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도 어쩌지 못한
다만 내 외로움
내 외로움 때문에 나는 슬펐다
그대 떠나고 난 뒤
가을 겨울 봄 다 가도록 외로웠지만
그대 곁에 있던 날들도
내 속에서 나를 떠나지 않는 외로움으로
나는 슬펐다
<청간정에서 바라보는 동해>
섬//
당신이 물결이었을 때 나는 언덕이라 했다.
당신이 뭍으로 부는 따스한 바람이고자 했을 때
나는 까마득히 멈추어 선 벼랑이라 했다
어느 때 숨죽인 물살로 다가와
말없는 바위를 몰래몰래 건드려보기도 하다가
다만 용서하면서 되돌아갔었노라 했다
언덕뿐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당신은 살았다 했다
당신의 가슴앓이가 파리하게 살갗에 배나올 때까지도
나는 깊어가는 당신의 병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어느 날 당신이 견딜 수 없는 파도를 토해 내 등을 때리고
한없이 쓰러지며 밀려가는 썰물이 되었을 때
놀란 얼굴로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거리로 떠내려가 있었다
단 한번의 큰 파도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당신을 따라가다 따라가다
그만 빈 갯벌이 되어 눕고 말았다
쓸쓸한 이 바다에도 다시 겨울이 오고 물살이 치고
돌아오지 못한 채 멈추어 선 나를
세월은 오래도록 가두어 놓고 있었다.
<설악산 십이선녀탕의 복숭아탕>
빈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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