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도종환,안도현,김용택

김용택 詩 (하)

머루랑 2009. 1. 9. 19:18

  <꽃 한 송이// 섬진강-1// 봄이 그냥 지나요// 참 좋은 당신// 푸른 나무-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농사꾼 김씨의 집// 빗장// 섬진강-15// 그이른 그 사람// 내게

   당신은// 이 바쁜 때 웬 설사// 사랑// 보리씨// 내가 살던 집터에서// 당신// 당신

   가고 봄이 와서// 남산// 우리는>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섬진강-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주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가고 있어요

 

 

 봄이 그냥 지나요//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 있어요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 데 꽃 피어날 거예요
생각해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 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울면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가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참 좋은 당신//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해도
참.좋.은.당.신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를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푸른 나무 1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당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당신...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당신...
 

  

 

 

 

  잡풀이 처마까지 자란 집에도 사람좋은 농사군 김씨가 작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농사군 김씨의 집//

       

      사람이 살았던

      농사군 김씨가 살았던 집

      마당이고 뚤방이고 뒤안이고 장독대고 간에

      풀들이 우북우북 자랐다

      저 집에도 저 풀 우거진 집에도

      저 피어나는 꽃 같은 얼굴로

      사람들이 살았던 집이다

      꺼멓게 끄을린 서까래와

      무너진 흙벽과 흙담

      문을 꽝꽝 질러 놓았어도

      담쟁이 넝쿨은 뚫어진 문구멍으로

      뻗어간다

      저기 저 방에서도

      화히 불 밝혀

      저기 저 마당에

      웃음소리 새어나와

      달빛을 부수던 때도 있었다

      마당엔 발들이밀 틈도 없이

      풀들이 우거져

      내 키를 넘고

      이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이 자란 풀들이

      서럽게 꽃을 피운다

      이제는 붉은 얼굴로

      언뜻언뜻 떠오르는 사람들

      저 무너지는 집, 잡풀이 처마까지 자란 집에도

      사람좋은 농사군 김씨가

      작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빗장//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섬진강-15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 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해 다 저물도록 그리운 그 사람이 보이지 않네 언제부턴가...

 

 

 

 

 

그리운 그 사람//

 

오늘도 해 다 저물도록
그리운 그 사람이 보이지 않네
언제부턴가 우리 가슴속 깊이
뜨건 눈물로 숨은 그 사람
오늘도 보이지 않네
모 낸 뚝 논 가득 개구리들이 울어
저기 저 산만 어둡게 일어나
돌아앉아 어깨 들먹이며 울고
보릿대 들불은 들을 뚫고 치솟아
들을 밝히지만
그 불길 속에서도 그 사람 보이지 않네
언젠가, 아 언젠가는
이 칙칙한 어둠을 찢으며
눈물 속에 꽃처럼 피어날
저 남산 꽃 같은 사람
어는 어둠에 덮여 있는지
하루, 이 하루를 다 찾아다니다
짐승들도 집 찾아드는
저문 들길에서도
그리운 그 사람 보이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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