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당신은// 이 바쁜 때 웬 설사// 사랑// 보리씨// 내가 살던 집터에서// 당신//
당신가고 봄이 와서// 남산// 우리는>
내게 당신은...
내게 당신은//
소낙비는 쏟아 지지요 소는 뛰지요~
이 바쁜 때 웬 설사//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 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마음도어디론가옮겨가기를바라고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컷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몸짓하나하나가다이
뻐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맑은 날] 시집에서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벌어지는일들이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 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추수 끝난 우리나라 들판 길을 홀로 걷는다
보리씨//
달이 높다
추수 끝난 우리나라
들판 길을 홀로 걷는다
보리씨 한 알 얹힐 흙과
보리씨 한 알 덮을 흙을
그리워하며 나는 살았다.
집 마당 달빛을 소리없이 밟고 지나 네 방문 여닫는 소리가 가만히 들리고 불이 꺼지면...
네가 살던 집터에서//
네가 살던 집터에 메밀꽃이 피고
달이 둥실 떴구나
저렇게 달이 뜨고
이렇게 네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너의 희미한 봉창을 두드리곤 했었다.
우리는 싱싱한 배추밭 머리를 돌아
달빛이 저렇게 떨어지는 강물을 따라서 걷곤 했었지.
우리가 가는 데로 하얗게 비워지는 길을 걸어
달도 올려다보고 땅도 내려다보며
물소리를 따라
우리는 어디만큼 갔다가는 돌아오곤 했었지.
물기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이마를 마주 대고
오불오불 꽃동네를 이룬 하얀 가을 풀꽃을
이슬을 머금어 촉촉하게 반짝여
가슴 서늘하게 개던 풀꽃들을 바라보는
달빛 비낀 네 옆얼굴은 왜 그다지도
애잔스러워 보였는지.
앞산 뒷산이 훤하게 드러나고
우리 가슴 속에 잔물결이
황홀하게 일어 돌아오는 길
우리는 동구 앞 정자나무 아래
우리 그림자를 숨기고
소쩍새 울음소리를 아득하게
때론 가까이
우리들 어디에다 새겨 듣곤 했었지.
그때 그 두근대던 너의 고동 소리가
지금도 내 가슴에 선명하게 살아나는구나.
네가 네 집 마당
달빛을 소리없이 밟고 지나
네 방문 여닫는 소리가 가만히 들리고
불이 꺼지면
내 방 달빛은 문득 환해지고
나는 달빛 가득 든 내 방에 누워
먼 데서 우는 소쩍새 소리와
잦아지는 물소리를 따라가며
왜 그리도 세상이 편안하고 아늑했는지 몰라.
눈을 감아도 선연하구나.
네가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은 철석 같은 믿음이 되어
네가 곧 나타날 것 같아
나는 숨을 죽이며
온 세상을 향해 내 마음은 모두 열리고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들리었지.
그럴 때마다 너는 발소리를 죽여 와서
(나는 그 때마다 네가 아무리 발소리를 죽여 와도
이 세상의 온갖 소리 속에서도
네 발소리를 가려 들었었지)
내 봉창을 가만히 두드리던,
아득한 그 두드림 소리가
메밀꽃밭 속에서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아
숨이 멈춰지는구나.
너는 가만히 문을 열고
떡이나 감홍시,알밤이나 고구마를 들이밀곤 했지.
아, 그때 동백기름 바른 네 까만 머릿결 속에
가락 같은 가르맛길이 한없이 넓어지고
가르마 너머 두리둥실 떠오른 달과
동정깃같이 하얗게 웃던 네 모습이
지금도 잡힐 듯 두 손이 가는구나.
생각하면 끝도 갓도 없겠다.
강 건너 나뭇짐을 받쳐놓고
고샅길을 바라보면
총총걸음하는 네 물동이 속 남실거리는 물에
저녁놀이 반짝일 때
나는 내 이마가 따가운 것 같아
이마를 문지르곤 했었다.
어쩌다 사람들이 있을 때
어쩌다 고샅길에서 마주칠 때
너는 얼른 뒤안으로 달아나거나
두 눈을 내리깔고 비켜서곤 했었지.
네 그 치렁치렁한 머리채와
빨간 댕기.
오늘밤도 저렇게 달이 뜨고
네가 살던 집터는 이렇게 빈터가 되어
메밀꽃이 네 무명적삼처럼 하얀한데
올려다보는 달은 이제 남 같고
물소리는 너처럼
저 물굽이로 돌아가는데,
살 사람이 없어
동네가 비겠다고
논밭들이 묵겠다고
부엉부엉 부엉새가
부엉부엉
저렇게도 울어대는구나.
그대는 내가 사는 저 하늘 이 땅 같아 나는 그대를 사랑 안에 있고, 그대 사랑은...
당신//
마음이 가면
봄갈이 해논 밭흙같이
보드랍고 따스한 몸이 오는 그대
그대 사랑은 한없이 크고
끝도 갓도 없이 넓어서
내가 그대 앞에 서서
이만큼 이만큼
이, 이, 이만큼 보다 더 크게
내 아무리 두 팔이 찢어지게
다 벌려
저 하늘
이 땅만큼
그대 사랑한다 해도
그대는
내가 사는
저 하늘 이 땅 같아
나는 그대를 사랑 안에 있고
그대 사랑은
내 손 내 맘 안에 닿는 데까지
피어나는 꽃처럼
일어서는 봄산처럼
세상을 환하게 열어줍니다
가난하고 쓸쓸했던 내 세상
봄이 오는 들길을 따라
불쌍한 우리 보리피리 불며
산 설고 물 설은 산중 땅
찾아온 그대
내가 저문 산처럼 배고파 누우면
그대는 내 곁에
저문 강으로 따라 누워
당신의 피와 살을 주어 채워 적시고
내가 새벽 산처럼 어둡게 서 있으면
그대는 훤한 앞산으로
해 받아 일어서서
내 이마에 이마를 대어
산문을 열어줍니다
사랑하는 당신
아직은 그대 앞에 두 손 다 편히 내려놓고
그대 바라볼 수 없이
흔들리는 우리 땅
우리들의 사랑.
바라보는 곳마다 꽃이요 잎입니다. 피는 꽃 피는 잎잎이 다 그리운 당신입니다~
당신 가고 봄이 와서//
바라보는 곳마다 꽃이요 잎입니다
피는 꽃 피는 잎잎이 다
그리운 당신입니다
당신은 죽어
우리 가슴을 때려 울려
이렇게 꽃 피우고 잎 피웁니다
꽃 피고 잎 피면
이리 마음 둘 데 없는 것은
괴로움만큼이나
훗날 서로 눈물 닦아줄 기쁜 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당신 죽어 재로 뿌려져
시퍼런 강물에 흐를 때
우리 얼굴에 하염없이 으르는 눈물을
서로 바라보며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당신 모습 고이고이 심었었지요
당신 모습이 찬바람 찬서리 지나고
봄이 와
이렇게 꽃 피고 잎 피는 곳
한편 슬프고 한편 기뻐요
커다란 충격이 서서히
잔잔한 그리움과 지긋한 아픔으로 고여 피어나듯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꽃으로 고여 피어나듯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꽃으로 피어나 기쁠
우리들이 기다리는 봄이 오면
우리 가슴 속에서
당신은 꽃으로 걸어나와
우리랑 저기 저 피는 꽃들이랑
봄 빛 돌아오는
저기 저 남산에 꽃산 이루겠지요
저것 보세요
보는 곳마다
걷는 곳마다
저렇게 걷잡을 수 없이
만발하는 꽃과 잎들
누가 다 막고
우리 눈 누가 다 가리겠어요
저기 저 남산 산비탈 푸른 솔숲 아래 꽃 피었네! 해도 달도 찾아들지 않았는데
남산//
저기 저 남산 산비탈
푸른 솔숲 아래 꽃 피었네
해도 달도 찾아들지 않았는데
나무꾼도 추워 들지 않았는데
몸보다 먼저 온 그리운 이
저기 저 남산 응달
잎보다 꽃으로 피어났네
불이 일 듯 불이 일 듯
그리움 타올라 번지며
가만가만 날 부르며
저기 저 남산 꽃산 되어 솟네
그대 만나러
저기 저 남산 꽃산 가는길
발 디딘 걸음걸음 마다
그리운 그대 얼굴 밟히어
눈물 어리는데
눈 주는 곳마다
그대 얼굴
몸보다 먼저 와
꽃대 위에 꽃으로 앉았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얼굴 맞대고 살아도 당신이 보고 싶고, 보고 싶고..
우리는//
우리는 서로 없는 것같이 살지만
서로 꽉차게 살아
어쩌다 당신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내 눈길은 여기저기
당신 모습 찾아 헤매입니다
강 건너 우리 밭가 감잎 사이
텃밭 옥수숫잎 사이에
어른 어른 호박꽃만 피어나도
내 가슴은 뛰고
바람에 꽃잎같이 설레입니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얼굴 맞대고 살아도
당신이 보고 싶고
밤이면 밤마다 살 맞대고 잠들어도
이따금 손 더듬어 당신 손 찾아
내 가슴에 얹고
나는 안심하며 잠이 듭니다
내 곁에 늘 꽃 피는 당신
내 마음은 당신한테 머물러 쉬며
한 세월이 갑니다.

김용택
- 출생
- 1951년 9월 28일
-
출신지
-
전라북도 임실
직업
시인
-
학력
-
순창농림고등학교
-
데뷔
-
1982년 시 '섬진강' 발표
-
경력
-
2003년 제4대 전북작가회 회장
2002년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덕치초등학교 교사
-
수상
-
2002년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
1986년 김수영문학상
-
대표작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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