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일상이야기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에서 저를 구해주세요

머루랑 2009. 9. 24. 12:19

 

 

 

      아래의 사진은 지난 1월초 천마지맥종주 제2구간인 백봉~예봉산을 종주하다가

       길을 잘못들어 알바를 하는 바람에 수리넘이고개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슴아픈 '자연학대의 현장' 입니다.

       이 나무는 앞으로 얼마나 큰 고통으로 굵은 철사줄에 허리를 옭아매인채 

       허리를 조여오는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누군가 철사줄을 제거하여 주지 않는한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에서 영원히 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굵은 철사줄에 허리를 묶여버린 나무(현재) 

  

       자세히 살펴보니 고개마루의 전신주를 이전, 설치하면서 필요 없게된 지탱줄을

       그냥 방치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애초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지탱줄을 설치하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곳 이라는 이유로

       나무둥치에다 묶어버린 작업자들의 안일함에 씁쓸한 마음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필요없게 되었을 때에는 당연히 절단기로 나무에서 

       잘라내 제거라도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저는 그때 이 나무와 무언의 약속을 했답니다.

       내가 다음에 다시 꼭 찾아와서 허리를 옭아맨 굵은 철사줄을 제거해 주겠노라고...

 

 

 

 

 

 △지난 1월초의 모습

  

      나무와 약속을 한 이후로 좀처럼 시간이 나지를 않아서 몇번이나 궁리만 거듭하다가 

       드디어 어제 장인산소 벌초 다녀오는 길에 일부러 덕소에서 마석을 넘어가는 

       86번 지방도로를 타고 경사가 심한 수리넘어고개로 향합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 아예 쇠톱날 두 개와 펜치 등을 준비하여 말입니다.  

 

 

  △굵기가 두 아름이나 되는 물푸레나무입니다

 

       수리넘이고개를 올라 주차를 하려하나 좁은 고갯길에 마땅히 차를 세워놓을 공간이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고갯길을 내려가 휴게소에서 차를 돌려 다시 올라와 간신히

       도로변 한켠에 주차를 하고 산을 오르는데, 온갖 덤불과 숲으로 우거져서

       길이 없어져 보이지 않습니다.

 

       낫으로 헤치고 가시에 긁히며 그렇게 한참을 올라도 나무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전혀 없는 외진 곳이라서 덤불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얼마를 더 헤메다가 어렵게 그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허리를 옭매고 있는 철사줄

 

       8개월 전에 보았을 때 보다 나무속으로 철사줄이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간 모습입니다.

       우선 나무 주변의 잡목들을 모두 제거한 후 절단작업에 들어가기 전, 나무에 다가가 살짝이 속삭입니다. 

 

       조금만 참으라고, 내가 고통에서 너를 구해주러 이렇게 왔노라고.... 

  

 

  △준비해간 쇠톱날을 꺼내어 쇠줄을 자르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둘러보며 자를 곳을 찾아보니 다행히도 굴곡진 부분이 한군데 있어서

      나무에 상처를 내지않고 자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준비해온 쇠톱날을 꺼내어 자르는 손이 떨려오며 기대감에 약간은 흥분도 됩니다.

  

 

   △드디어 허리를 감고있던 고통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렇게 자르기를 한참, 드디어 허리를 칭칭감고 있던 굵은 쇠줄이 텅소리와 함께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볼펜 잉크관 굵기의 철사 여덞가닥을 꼬아서 만든 지탱줄 마지막 가닥을

       반 정도 잘랐을 무렵, 갑자기 텅! 소리와 함께 나머지 철사가 그냥 끊겨져 나갑니다.

 

       나무가 버티는 압력으로 그만 철사가 툭하며 끊어진 것이지요.

 

  

   △상처의 흔적입니다

 

       순간, 물푸레나무의 기쁨에 겨운 긴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얼마나 긴 세월을 고통에 시달리며 인간들을 원망했을까~

 

       비록 상처는 이렇게 남았지만

       오랜시간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에 시달려온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상처는 서서히 엷어 질 테니까요.

 

       나무를 감싸 안아보니 두 아름이 넘는 거대한 굵기의 나무입니다.

 

 

   △제거한 철사줄이 10m가 넘습니다

 

 

 

       조상묘 벌초하 듯, 나무 주변의 잡목들을 말끔히 제거하고 나무를 살펴보다가 

       비로소 이 나무가 물푸레나무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곤 나무에게 다가가 속삭입니다.

 

       나무야 좀더 일찍 달려와 철사줄을 제거해 주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고통없이 수명을 다할 때 까지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차량들을 굽어보며,

       사려깊지 못한 인간들을 용서하며 건강하게, 건강하게 자라라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뭇잎이 일제히 큰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마치, 감사하다는 인사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