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는 칼날 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다스렸던 법정스님은 남들에는 항상 따뜻한 분이셨다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에게 언제나 큰 가르침으로 일깨워 주셨던
법정스님이 입적하신지 오늘로써 49일째, 법정스님 49재가 열리는 날 전국적으로 하늘에선
큰 스님을 잃은 슬픔인지 조계산 송광사 대웅전 뜰에도 굵은 꽃비가 내립니다.
우리 해군 46용사의 영결식 바로 하루 전에 열리는 스님의 49재라 그런지 불자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 가슴에는 슬픔이 더 무겁게 무겁게 내려 앉아
저온 현상의 날씨 만큼이나 마음이 춥고 아려옵니다.
△삼청교와 연결된 우화각 처마에선 굵은 눈물을 줄줄 떨구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삼청교아래의 징검다리는 새로 놓은 다리로 가려져서 아름답던 옛 멋을 모두 잃고 말았다
△조계산 송광사 대웅전 앞뜰에서 열린 법정 대종사 49재
△봄비 치고는 세차게 내리는 차가운 비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추모하는 열기는 뜨겁습니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입구의 대나무숲
△스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몸집을 키웠을 저 대나무숲은 몸을 서로 부비며 속으로 울고 있네요
△불일암 전경/ 스님이 손수 밭을 일구며 채소를 가꾸시던 텃밭이 보입니다
불일암을 오르는 돌층계도 원래는 정면 중앙에 있었는데 불일암에서 생활하신지 10년째가 되던
1985년에 현재의 장소로 옮기셨다. 저 아래 대숲에서 부터 빤히 쳐다보고 오르기 보다는 채소밭을
돌아 곁길로 오르니 오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았다고...
새로 낸 층계위에 후박나무가 있어 훨씬 운치는 있는데 그 일로 10년 전에 직접 심으신 후박나무의
잔뿌리를 적잖이 잘라야 했는데, 스님은 후박나무한테 심히 미안한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시고 저서에서도 기술을 하셨다.
△불일암처소에 마련된 단촐한 추모제단
△스님이 평소 애정을 주시며 키우시던 홍매화는 저온현상으로 인해 꽃망울이 움츠러 들었어요
△자연과 동화되어 사시면서 꽃을 좋아 하셨던 법정스님은 특히 수선화를 아끼고 좋아하셨다
△봄이면 제일먼저 스님과 눈을 맞추었을 붉은 동백은 그 아름다움을 잃지않고 피어있고...
△스님이 사색하며 넘나들었을 저 언덕 고갯길 저 너머엔...
△기도 정진에 여념이 없으시면서도 스님은 틈틈히 집필을 열심히 하셨다
△홀로 생활하시면서도 자신에게는 엄청 엄격하게 자신을 다스렸다
스님은 평소 얼마나 깔끔 하셨는지 세수 대야도
발 닦이용과 세수용(우측)으로 서로 구분해서 사용을 하셨다.
△불일암 수돗가에 한번 가 보라 얼마나 소박하고 정갈한 삶을 사시려고 하셨는지...
△스님의 저서에도 등장하는 처마밑 저 풍경은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떠어 냈었다고~
△겨울 난방용 땔감은 뒷산에 올라 손수 지게로 져 날랐다/ 장작 하나라도 아무렇게 쌓지 않은 모습에선 그 성품이 보인다
△이 세상에서 제일 호화로운(?) 법정표 의자~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신 법정스님께선 보잘 것 없는 것 하나라도 허투루 대한 것이 없다.
저 유명한 법정표 의자도 땔감용으로 마련한 장작더미속에서 고른 나무들을
톱으로 잘라 맞추어서 스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다.
아마 이 보다도 더 고급스럽고 멋진 의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저 의자에 앉아 스님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큰 무례를 범하는 것 같아 참았습니다.
△절제된 구도자의 모습에선 텅빈 가슴에 큰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엉덩이도 올리기도 좁아 보이는 저 작은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정다운 도반과 차를 나누시는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미소'에선 평소의 엄격하시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오히려
어린 소년의 장난끼 같은 것이 느껴져 웃음이 배어나지 않나요?
△조용히 꽃잎을 여는 수련을 앉아서 감상하시던 통나무 의자엔 대신 예쁜 꽃화분이 올려져 있습니다
△만드는 손재주가 아주 좋으셨던 스님은 기왓장을 가지고도 이렇게 멋진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심으셨다
△불일암 곳곳엔 이런 통나무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는데, 산책 하시다가 여기에 앉아 사색에 잠기시길 좋아하셨다
△멀리 앞산에서 들려오는꾀꼬리와 뻐꾹이 노래 소리를 들으며 이른 봄, 나무들이 풀어내는 물감을 감상했던 통나무의자
△손제주가 좋으셨던 스님은 쓸모없는 것 같은 통나무에도 이렇게 숨결을 불어 넣으셨다.
(자세히 보면 물고기를 비롯한 작은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볼일 보는 곳(정랑)/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하여 간혹 해우소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얼마나 청결하게 관리하고 사용을 했는지 스님의 성품을 바로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일반집 거실보다도 더 깨끗하여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다음에 가시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스님이 그토록 보고싶어 하시던 홍매화는 이제야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을 했습니다
△묘하게도 법정스님이 영원한 안식에 드신 후박나무쪽으로 연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유골이 뿌려진 후박나무/ 스님의 저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잎이 넓은 나무입니다
후박나무주변에 전날 미리 구덩이를 파고 내리는 비를 피하려고 비닐을 씌워 놓았는데
49재 의식이 시작되기 전, 불일암을 무심코 둘러보던 불자들도 이 후박나무 아래에
스님의 유골이 뿌려질지는 어느 누구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1975년에 이 나무를 심으셨다)
<인연과 만남/ 법정>
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 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나누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삶의 종점에서/ 법정>
살 만큼 살다가 삶의 종점애서 다다랐을 때
내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원천적으로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물질이든 명예든 본질적으로 내 차지일 수 없다.
내가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진정으로 내 것이 있다면 내가 이곳을 떠난 뒤에도
전과 다름없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평소 타인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 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베픈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옛말에 '아무것도 가져 가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업만 따를 뿐이다' 라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
나누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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