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일상이야기

잃어 버렸던 처 할아버지 산소를 34년 만에 되찾은 사연

머루랑 2010. 9. 15. 16:11

 

 △원주 백운산 자락에서 34년 만에 되찾은 처 할아버지 산소

            

       원주시 치악산 맞은편 백운산 자락에 있다는 처 할아버지의 산소는 34년 전에 장인이 앓아 누

      우면서 명절 때나 벌초 하러도 들르지 못해 잊고 있다가 그만, 장인이 일찍 돌아가시고는 산소를 찾는 발

      길이 없어서 아주 잊혀진지 오래 되었다 합니다.

 

      딸 다섯에 3대 독자인 아들이 하나 있는데 처남이 장인과 마지막으로 산소를 찾았던게 중학생 시절 인지

      라 산소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지도 못하고, 그 처남 마저도 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산를 알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게되어 버렸죠. 딸들이 많지만 벌초 때는 데리고 다니지도 않아서 산소를

 

      아는 딸들은 아무도 없고, 출가하여 다들 살기에 바빠서 할아버지 산소는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해

      부인가 한번 찾아 보자고 의견은 모았는데 마을이 있는 지명도 모르고 원주'새말'이라는 것 밖에는 모

      르니 서울에 가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또 34년이 렀는데 그 주변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는 상황

 

      에서 산소를 찾을 길은 더욱 불가능해 보였는데, 어른들이 말씀 하시던 중에 우리 동네와 같은 '신촌'이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는 처제(넷때 딸)의 말에 지리에 비교적 밝은 제가 원주 주변의 지도를 뒤지

      다가 영동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있는 새말이 아니고, 원주에서 옛 치악재를 넘어가는 5번 국도변 우측

      계곡 끝에 '신촌''새말'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지요.

 

 

 △처남의 어린 기억속에 부대가 있었다는 우측의 자리엔 부대는 흔적도 없고 나무만 무성하네요 

 

       그러나 마을 이름은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34년 전의 모습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텐데 어떻게 찾을

      것인지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몇 년을 더 지내다가 미국에서 사업하는 3대 독자인 처남에게 전화하여

      이른 봄에 귀국을 하라고 말했죠.

 

      "눈과 낙엽이 쌓여있는 계절엔 산소를 찾기가 더 어려우니 새싹이 돋기 전인 4월 말에서 5월 초에 귀국 하

      라고..."  "헛고생 하는 셈치고 일단 산소를 찾으로 원주 백운산으로 한번 가 보자고"...

      "산소를 끝내 찾지 못한다면 산자락에다 술이나 한잔 따르고 오자" 면서요. 

 

 

 △개울을 따라 이어지던 좁은 오솔길은 넓은 포장 도로로 변해버리고...

 

       처남의 옛 기억에 따르면 원주역에서 제천가는 버스를 타고서 관설동 부대앞에서 내려 하천

     을 따라서 시오리 가량을 더 걸어 들어갔고, 그 새말이라는 곳엔 장인이 벌초를 내려오면 하룻밤을 묵어

     가던 형님,아우 하던 오씨라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살아 계시는지 니면 다른 곳으로 이미 이사를 갔는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설혹 살아 계신다 하더라도 이미 연세가 팔십은 훌쩍 넘기셨을 고령인데...

 

     살아 있다면 그분께 할아버지 산소의 위치를 물어서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벼르다가 지난 5월 초에야 LA에 사는 처남이 귀국을 하였고, 처남과 함께 새벽에 원주로 출발을

     하면서 어쩐지 오늘은 꼭 산소를 찾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처남의 기억대로 군부대가 있었다는 곳에

 

     내려서 부대를 찾으나 군부대는 흔적도 없고 빽빽히 숲이 우거진 산으로 변해 있네요. 도랑을 오가며 이

     어지던 좁은 오솔길은 차량 한대가 오갈 수 있는 포장도로로 변해있구요. 나중에 안 것 이지만 군부대는 

     이미 수 십 년 전에 이 부근에 큰 수해가 나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갔답니다.

 

    

 △차창밖을 내다보는 처남의 입에선 연신, '아이고 아무 것도 모르겠네, 아무 것도 모르겠네' 만 연발하고~ㅎ

 

     가 3~4채 모여있는 새말에 차를 세우고, 밭일 하시던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이 마

     을엔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은 애초부터 살지도 않았고 이사를 간 사람 중에도 없다고 합니다.  

     처음 부터 벽에 부딪히는 난감함이란...오씨라는 사람을 왜 찾냐고 묻길래 그 사람이 내 장인어른과 함께

 

     할아버지 산소의 벌초 작업을 도와 주었는데 그 사람을 찾으면, 혹시나 처 할아버지 산소를 찾을 수 있

     지나 않을까 해서 이렇게 왔노라고 말하니 처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바깥 양반

     이 바로 댁들이 말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씀 하시네요! 세상에~ㅎ 

 

     처가 집에서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오씨라는 사람은 오씨가 아닌 올해 82세의 김병주 할아버지 이시며,

     걷는 것이 조금은 불편 하지만 아직은 건강 하시답니다. 마을에 내려서 처음으로 물은 집이 바로 3~40년

     전에 장인 어른이 벌초를 내려 오셔서 하룻밤을 묵어 가시던 바로 그 집이라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 수 있나요?

 

     새벽에 서울을 출발 하면서도 설마 산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겠냐는 기대는 사실 10%도 걸지 않았었고, 

     "찾다가 영 못 찾으면 산 아래서 그냥 술 이라도 한잔 올리고 오자" 하고 왔는데 말입니다~~♬  

 

 

 △교회 연수원에서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오른 다음, 주 계류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오고.... 

 

     은 할아버지께서 두릅을 따러 산에 가시고 집에 안 계신다네요. 그렇다고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분을 무턱대고 기다릴 수 없어서 산소가 있다는 산의 위치를 물으니 당신은 잘 모르고 계곡길을 한참 따

     르다가 개울을 한번 건너면 우측으로 또 작은 계곡이 나오는데 그 능선 끝의 어디쯤 이라는데 자기는

     리가 불편해서 거기 까지는 가지 못하니 천천히 살펴보며 한번 올라가 보라고 합니다~

     

     순간, 처남의 표정을 살피니 난감함과 당황함에 어찌 할바를 모르는 듯 합니다. 아마 머리속이 하얗게 변

     하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패닉에 빠진 듯 보입니다. 34년 전에 벌거숭이에 가깝던 산이 지금은 아름들

     이 나무들이 우거져 한줌의 햇볕도 들지 않을만큼 밀림과 같은 숲으로 변해 있으니 말입니다. 

       

     처남의 옛 기억으로는 개울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곡 주변을 샅샅이 더듬

     었으나 산소를 쓸만한 자리는 계곡의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자손이 청개구리도 아닌데 설마 개울가 옆에

     다 산소를 모셨겠냐고 처남에게 이야기 하지만 처남은 계속 자기의 옛 기억이 맞다고...     

 

  

 △옛날 화전민 밭이었던 자리엔 이렇게 낙엽송이 우거져 있으니 처남의 기억 속에는 없는 풍경 이겠지요~ㅎ 

  

     과 서로 떨어져 종일 치악산 자락을 오르 내리며 묵은묘 흔적을 찾아 보지만 두엄속서 바늘 찾기

     도 아니고 이 넓디넓은 치악산 줄기에서 34년 동안이나 방치된 묘를 찾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 입니까?

     휴일마다 산에 다니는 저와는 달리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처남은 골프나 치겠지 산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너무나 힘든 나머지 더 이상 찾는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아서 그냥 내려 가자고 합니다.

    

     애초에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점심이나 간식을 싸오지 않아 허기진 배를 를 물로만 채우려

     니 체력은 급속히 저하되고 실망감에 의욕도 떨어집니다. 처남은 오늘은 포기하고 다음에 다시와서 찾아

     보자며 산을 내려 가자네요. 먼저 내려가는 처남을 뒤로 하고 우거진 낙엽송 사이의 가시덤불을 헤치며 이

 

     리저리 숲속을 뒤지다 보니 덤불에 가려진 약간 평퍼짐한 곳으로 자꾸만 제 눈길이 쏠립니다. 이상한 느낌

     과 함께 번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덤불들을 헤치고 들어 갔더니, 제 육감대로 방치된 묵은 묘가 나옵니다.

 

     이미 저만큼 내려간 처남을 소리쳐 불러 올려 이게 바로 할아버지 산소가 아니냐고 물으니 처남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할아버지 산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산소는 이런 곳이 아니고 물이 흐르는 개울

     가 가까운 곳 이라고 종전의 고집을 꺽지 않습니다~ㅎ

    

 ▲지난 5월 초, 산소를 처음 발견했을 당시의 폰사진

 

 △이번에 벌초 작업을 말끔히 마치고 나니 비로소 온전한 형태의 묘소가 되었습니다

 

     처남이 중학생 때, 장인을 따라 성묘와서 봉분앞 땅속에다 뭍어 놓았다는 손바닥만한 그 돌이 나오면 할아

     버지 산소가 맞는 것 이라며 호미로 봉분앞의 흙을 파헤쳐 보지만, 묻어 두었다는 돌은 나오지 않으니 괜히

     남의 산소만 파친 꼴이 되었습니다.

 

     큰 실망감을 안고 돌아 서면서 산소를 찾지 못하면 산 아래서 제사를 지내려 싸온 술을 꺼내 파헤친 묘앞에

     잔을 올리며 용서를 빕니다. "울 조상묘 찾는다고 괜히 남의 산소를 건드려서 죄송하게 되었으니 부디 용서

     해 달라고" 하면서요~

  

     실망감을 안고 민가로 내려오니 마침 두릅을 따러 가셨다던 그 할아버지께서 돌아와 계십니다.

     반가운 마음에 온 종일 산속을 오르 내리느라 허기진 것도 잊은채, 즉시 산소까지 같이 가 주실 수 있느

     냐고 여쭈니 고맙게도 힘들지만 한번 올라가 보시자고 하시며 커다란 지팡이를 짚고 앞장을 서십니다.

      

     힘들면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산길을 오르는 노인의 뒤를 따르면서 야릇한 긴장감과 함께 많은 생각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좀 전에 파헤치다 온 산소가 제발 맞기를 간절히 기도 하면서요.

 

     개울 합수점을 지나고 삼거리에서 노인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나도 모르게 온몸이 전율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환성을 지를 뻔 했어요. 왜냐하면 그 길은 우리가 묵은 묘에서 톱과 낫으로 잡목들을 제거하

     면서 길을 내며 내려온 길인데, 바로 그 길로 노인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올라 가시는게 아닙니까. 

 

     가며 노인의 뒤를 따르다 노인이 멈추어 선 곳에서 그만, 숨이 멎을 뻔 했어요. 그 곳은 바로

     좀 전에 술을 한잔 올렸던 그 묵은묘가 아닌가. 자기가 봉분앞에 묻어 두었다는 돌이 나오지 않아서 아직

     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처남은 연신 이곳이 분명히 맞냐고 노인에게 몇 번이나 물어 보지만 돌아오

     는 인의 대답은 내가 한 두 번 온 것도 아닌데 이곳이 틀림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해가 갈 수록 빈병의 숫자는 점점 늘어 가겠지요~  

 

      시간이 넘도록 썩어 넘어진 아름드리 낙엽송들을 들어내고 주변의 덤블을 제거하고 덤불 뿌리를 뽑

     다 보니 오후 5시가 가까운 시각까지 먹은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습니다.

     34년 동안이나 방치 되었던 산소를 하루 아침에 예전 모습으로 되 돌리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참을 베어 내고 뽑아내다 보니 비로소 무덤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덤불에 가려져 있던 예전에 쌓은

     석축의 흔적도 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나마 묘가 이렇게라도 온전한 형태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드리 낙엽송들

     이 드리우는 그늘 때문에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가 없어서 입니다. 처남이 바로 산소를 찾지 못했던 것은

     34년 전에는 벌거숭이에 가깝던 산이 아름드리로 우거진 낙엽송숲 때문에 주변 풍경이 완전히 다른 모습

     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일 것 입니다.

 

 

 

△깊은 계곡은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곳이라 태고적 분위기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주말, 두 번째로 다시 찾은 처 할아버지 산소 벌초 내려 가는 날은 때아닌 가을 장마로 200mm가 

     넘는 폭우가 전국에 쏟아져 침수 피해가 발생되는 등 이상한 날씨였지만 벌초를 하는 내내 치악산 줄기는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무난하게 벌초를 마칠 수 있었으니 이것은 처가 조상님이 도왔다고 해야겠죠~

 

      주변을 말끔히 정리를 마치고 멀리 미국에 있는 3대 독자인 처남을 대신해 술 한잔 올리니 제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네요. "그동안 후손들이 찾아뵙지 못하여 대단히 죄송한 일이고,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손

     자, 손녀들을 서해 달라"는 말도 빼 놓지 않았구요~

 

     그리고 "너무 멀어서 자주 찾아 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고 그동안 돌보지 못한 죄로

     정성껏 묘소 관리를 잘해 드리겠다고"...산소로 오르는 깊은 계곡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태고적 분

     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자연이 살아 숨쉬는 아름답고 편안한 안식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벌초를 마치고 산을 내려 오자마자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대추 알 굵기만한 폭우가 쏟아 지는데

     것은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멀리서 혼자 벌초하러 내려온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셋째 손녀 사위가 예쁘고 기특하여(?) 

 

     편안하게 벌초를 마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처가 조상님의 배려는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