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언덕/ 노천명, 비목/ 한명희, 새빨간 장미/ 번즈, 유월의 시/ 김남조, 6월/ 김용택, 6월/
오세영, 6월의 장미/ 이해인, 꽃씨와 도둑/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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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들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하지 않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핀 유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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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언덕/ 노천명>
초연이 쓸고간 깊은계곡 깊은계곡 양지녘에
비바람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머어언 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비목/ 한명희>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유월엔 내가/ 이해인>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단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유월의 시/ 김남조>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 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6 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6월/ 김용택>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향기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6월/ 오세영>
오 나의 님은 유월에 새로이 피어 새빨간 장미 오 나의 님은 곡조 맞춰 감미롭게 연주된 멜로디.
이처럼 너는 예뻐, 사랑스런 소녀야, 이처럼 깊이 나는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나는 너를 사랑하리, 내 님이여, 온 바다가 말라버릴 때까지.
온 바다가 말라버릴 때까지, 내 님이여, 그리고 바위가 햇볕에 녹아 없어질 때까지 오 언제까지나 나는 너를 사랑하리, 인생의 모래알이 다 할 때까지.
그러니 잘 있어, 단 하나의 내 님이여, 잠시 동안 잘 있어! 그럼 나는 다시 돌아오리, 내 님이여, 만리 먼 곳이라 할지라도.
<새빨간 장미/ 번즈>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꽃씨도둑/ 피천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