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쓸개처럼 쓰다는 그 뿌리 혀로 녹이며 마치 마지막 밤을 밝히듯 자색으로 피어나는 용담이여~
용담꽃/ 홍해리
비어 있는
마당으로
홀로 내리는
가을볕 같이
먼저 간 이를
땅에 뭍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 같이
이 냥
서럽고쓸쓸한
이 가을의 서정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
홀로 가득하다.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에
용담꽃/ 윤후명
용담꽃 피기 시작하니
가을이 깊어가는데
남색 저고리 입고
남색 추억을 저미고
가을이 아파 오는데
용의 쓸개처럼 쓰다는 그 뿌리는 혀로 녹이며
마치 마지막 밤을 밝히듯이
삶의 쓴물로
새로 태어난 배냇등불을 켜네
먼저 간 이를 땅에 뭍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 같이
용담꽃/ 복효근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려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 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
길 잃은 벌들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떠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담 여인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숙을 알고 있다/ 정일근
해 지고 추워지기 전에 그 여인숙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두워지면 문을 꼭 닫고, 파란 슈미즈를 입은 여인숙 주인
밤새 손님을 뜨겁게 안아주지요, 아침 햇살이 찾아오면
주인이 손수 대문 열어 손님을 정중히 떠나보내고
손님은 제 몸에 스민 꽃내음 감추지 못해 붕붕거립니다
얼마냐고 묻지를 마세요
숙박비도 하룻밤 꽃값도 무료입니다
십일월 찬 서리 내린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오래오래 피어 있는 은현리 용담꽃
길 잃은 벌들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떠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숙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용담(龍膽)/ 홍해리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치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답다'는 꽃말을 가진 용담, 아버지 산소에 피어 있어서 인지 더 서럽게 보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해마다 아버지의 생신 날이 돌아오면,
경기도 광탄에 있는 산소를 찾아가 술잔을 올리곤 하는데...
전에는 보지 못한 용담꽃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것도 하나가 아닌 세 포기나...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은 산자락에서 자생하는
용담이 어찌하여 해발이 채 150m도 안되는 낮은 야산에서
남색차림으로 곱게 이 가을에 찾아 왔는지...
벌써 열일곱 번 째 찾아오는 산소의 가을 이지만,
산소 바로 옆에서 자라는 용담을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다니
처음에는 많이 놀라고, 또 얼마나 반갑던지
그래서 이 가을이 더욱 기대되고,
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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