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최원정, 봄 밤/김은숙, 연한 보라색/이향아, 낡은 집/나정순, 매화를 심은 뜻은/이양우,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김용택>
햇살에게 들켜 멋쩍어 웃어제끼는 저 모습 좀 보소
<청매(靑梅)/ 최원정>
여인의 부드러운 나신으로
봄볕바라기하며 누워있는
섬진강 팔십 리
언덕에서 훔쳐보다
햇살에게 들켜
멋쩍어 웃어제끼는
저 모습 좀 보소
눈이 부셔
가는 실눈으로 엿보아도
어깨춤이 절로 나는
저 꽃잎을 보소
매향(梅香)으로 익힌 사랑
섬진강, 차마 잊지 못해
오진 항아리 속에 앉아
곰삭이고 있는
저 미련을 보소
잠자던 골짜기 피돌기를 하며 밤새 뒤척이며 봄불 지피는 소리
<봄 밤/ 김은숙>
큰 산 하나 다가와
가슴을 덥힌다
지리산 큰 그림자 조심스레 내려와
마른 대지 안으며 보듬는 손길
벚나무 수액으로 부지런히 오르던
섬진강 봄 물길이 보는가
잠자던 골짜기 피돌기를 하며
밤새 뒤척이며 봄불 지피는 소리
물길따라 수줍게 벙글어지던
섬진강 벚꽃들이 귀를 열고 듣는가
지천이던 청매화 강물로 지는 사이
저편 산자락 어느 언덕에는
어떤 인연의 끈들이 운명처럼 닿아
산수유꽃 조팝나무꽃 진달래 꽃불들이
뜨거운 숨결로 타오를 것인데
큰 산 하나 물빛으로
가슴을 메워도
그립다는 말조차
차마 못 하리
나의 태교는 일요일 아침 하얀 사기 찻잔,구름 뜨는 청매화의 아름다운 사중창
<연한 보라색/ 이향아>
내 육신 구천 매듭 뼈가 무너진 후
'딸입니다' 기적처럼 아가가 왔다
나의 태교는 일요일 아침
하얀 사기 찻잔
구름 뜨는 청매화
아름다운 사중창
수정 비둘기
그런데도 사람들은 귀가 먹어서
복이나 많고 명이나 길라고
우리 모녀를 위로했었다
위로라니 어림없는 말
손가락도 발가락도 정교한 열 개
나의 태교는 삼월의 평원
봄 봄 물오르며 퍼지는 소식
불면 슬릴 듯 연한 보라색
먼지 속에 묻혀 그대로 편안한 낡은 집에서 봄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낡은 집/ 나정순>
어두칙칙한 빛깔이
오래된 두께로
내려 앉은
그런
낡은 집에서
살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빛이
먼지 속에 묻혀
그대로 편안한
낡은 집에서
봄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묵은 꿈을 익혀 가며
아직 추운 봄
청매 하나로 피는
낡은 향기이고 싶습니다
청매 굽은 허리 용틀은 몸짓 허공에 사위는 바람도 존엄함..
<매화를 심은 뜻은/ 이양우>
청매 굼은 허리 치렁타가 용틀은 몸짓
허공에 사위는 바람도 비켜가는 존엄함
뜰앞 연못 가에 그 한 그루 심은 뜻은
하나를 벗하여 둘을 즐기렸음이니
여인아, 네 곱다란 연지 웃음도
이 정결한 몸매 무서리 닥치고
설한풍 이겨낸 봄 아지랑이 살결
그 언저리에 꽃을 피울 마음이련가,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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