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꽃 사랑/전숙영, 빈집/류제희, 앵두꽃 피는 사이/하종오, 비 내리는 날/이남일>
달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앵두꽃 고요의 정적 흔들며 그 빛살아래 몸을 떤다
<앵두꽃 사랑/ 전숙영>
달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앵두꽃
고요의 정적 흔들며
그 빛살아래 몸을 떤다
눈부시지 않아
풍요로움 쏟아내는 꽃잎의 향
소리 없이 밤을 밝히며
밤을 지키고
밤을 지핀다
동지의 살얼음 재우며
오월의 옷을 입는 꽃잎이여
그리운 씨앗들 여물어
하늘하늘 고운 빛 갈아입나니
삶에 서투른 한숨일랑
가지 끝 진자리로 뉘었다가
전신으로 꽃피우는 앵두나무
섭심한 내 마음에 뿌리 하나 박으리
앵두꽃 환한 무더기가 어둠골짝 꽃등불로 밝히고 있다.
<빈 집/ 류제희>
보릿고개 중턱쯤
냉이꽃들이 마른버짐으로 피어나는 식구들의
중심을 떠받치고 있는
삭은 뼈마디, 마디마디 매미 껍질같이 바숴질
세월의 잔해
헐거워진 봄의 관절 틈으로
때를 아는, 씨감자 몇 알 쭈글쭈글
독을 품고 새파랗게
앵두꽃 환한 무더기가 어둠골짝
꽃등불로 밝히고 있다.
전신으로 꽃피우는 앵두나무 섭심한 내 마음에 뿌리 하나 박으리
<앵두꽃 피고 지는 사이/ 하종오>
잎새가
나를 끌어다 놓고 한 생을 받들게 했다
내가 기뻐하니 꽃피었다
뿌리가
내게 닿아서 한 생을 파들어오게 했다
내가 아파하니 꽃 졌다
앵두꽃 눈망울에 봄이 뭉클 피어나던 것을 내내 잊고 있었습니다.
<비 내리는 날/ 이남일>
잊고 있었습니다.
뒤안에
봄비가 내리는 날
앵두꽃 눈망울에
봄이 뭉클 피어나던 것을
내내 잊고 있었습니다.
고향에
봄비가 내리는 날
복사꽃 언덕 위에
봄이 새파랗게 피어나던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날
등교 길 아이들 얼굴에
봄비 맞은 웃음이
새봄처럼 환히 피어나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