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불던 바람에 약한 허리를 다친 보랏빛 다알리아여~
밥집 앞에 잠깐 서 있었을 뿐인데,
여름 한낮의 텅 빈 기갈을
허겁지겁 채운 뒤 민박집 마당으로
막 내려섰을 뿐인데,
크고 탐스러운 꽃이었다. 이름을 몰라
물어보니 '달리아'라 한다.
보랏빛 얼룩이 둥글게 다발을 이룬 흰 꽃잎 속으로
슬픔처럼 스며든다. 사십칠만 시간의 내력을
올올히 헤쳐놓고 헤아려 보지만
이 슬픔 어디서 오는가.
나는 다만 기억에도 없는 꽃 한 송이를 쫓아
여기까지 불려 와서
비로소 누군가의 손을 잡아보는지.
天竺에서 天竺으로
어제 불던 바람도 오늘은 아주 그쳐버려서
나는 허기진 배나 채우려고
여름 한낮의 그늘을 기웃거렸을 뿐인데
이 자릴까, 낯선 모습으로 만나
한나절 잘 사귀어보라고, 잠시 포만飽滿하라고
밥집 마당의 꽃 한 송이로
천축 저 너머까지 갑자기 환해질 때
돌아갈 길 막막하던 고향
<달리아/ 김명인>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부끄러운 젖가슴을 어이 감출꼬~
가을볕 째앵하게
내려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다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다알리아.
시악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악시야.
순하디 순하여다오.
암사슴처럼 뛰어다녀보아라.
물오리 떠돌아다니는
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
함빡 피어나온 다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나오는 다알리아.
<다알리아/ 정지용>
해마다 노랑 원추리 긴 꽃대로 피어 바람에 흐느적 거리는 사연은...
메마른 그 해 여름
뜨거운 넋들 흩어지던 산하가
어디 지리산 뿐이랴만
해마다 노랑 원추리
긴 꽃대로 피어
하마나 하나되는 그날이 올까
모진 세월
슬프도록 야윈 목으로
꺼이꺼이 목놓아 울
너는 용감한 용사와 영용한 전사의 넋
<원추리/ 권경업>
두 손으로 만져보고 싶도록 예쁜 네 얼굴에는 독이 있어서 만질 수가 없다지??
구부정한 샛길 따라
생각지도 않은 옛 친구 떠올리며
혼자웃음 웃는데,
누군가 갑자기 팔을 잡았을 때의
꼭 그런 느낌
여름해가 아직 게을러
애써 그늘 찾지 않아도
그냥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인데,
어느 집 담을 넘는 된장찌개의
꼭 그런 맛깔
<능소화/ 최동희>
울컥 솟구치다 뜨겁게 타들어가 붉은 재가 되는 꽃심지 처럼~
그리울 때마다
돌돌 말아두던 마음
더는 가둘 수 없구나
사무치다 북받치는 가슴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구나
울컥 솟구치는 피
뜨겁게 타들어
재가 된 심지
그나마 흩어질까
또 다시 접어두는 그리움
<접시꽃/ 장미숙>
당신이 아니면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생애에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시여!
드릴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기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 옵니다
<해바라기 연가/ 이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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