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봄, 여름 詩

여름 꽃시 (6편)

머루랑 2010. 8. 12. 12:43

 

어제 불던 바람에 약한 허리를 다친 보랏빛 다알리아여~  

 

 

밥집 앞에 잠깐 서 있었을 뿐인데,

여름 한낮의 텅 빈 기갈을

허겁지겁 채운 뒤 민박집 마당으로

막 내려섰을 뿐인데,

크고 탐스러운 꽃이었다. 이름을 몰라

물어보니 '달리아'라 한다.

 

보랏빛 얼룩이 둥글게 다발을 이룬 흰 꽃잎 속으로

슬픔처럼 스며든다. 사십칠만 시간의 내력을

올올히 헤쳐놓고 헤아려 보지만

이 슬픔 어디서 오는가.

 

나는 다만 기억에도 없는 꽃 한 송이를 쫓아

여기까지 불려 와서

비로소 누군가의 손을 잡아보는지.

天竺에서 天竺으로

어제 불던 바람도 오늘은 아주 그쳐버려서

나는 허기진 배나 채우려고

여름 한낮의 그늘을 기웃거렸을 뿐인데

 

이 자릴까, 낯선 모습으로 만나

한나절 잘 사귀어보라고, 잠시 포만飽滿하라고

밥집 마당의 꽃 한 송이로

천축 저 너머까지 갑자기 환해질 때

돌아갈 길 막막하던 고향

 

<달리아/ 김명인>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부끄러운 젖가슴을 어이 감출꼬~

  

가을볕 째앵하게

내려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다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다알리아.

 

시악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악시야.

순하디 순하여다오.

암사슴처럼 뛰어다녀보아라.

 

물오리 떠돌아다니는

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

 

함빡 피어나온 다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나오는 다알리아.

 

<다알리아/ 정지용> 

   

 

 해마다 노랑 원추리 긴 꽃대로 피어 바람에 흐느적 거리는 사연은...

    

메마른 그 해 여름

뜨거운 넋들 흩어지던 산하가

어디 지리산 뿐이랴만

해마다 노랑 원추리

긴 꽃대로 피어

하마나 하나되는 그날이 올까

모진 세월

슬프도록 야윈 목으로

꺼이꺼이 목놓아 울

너는 용감한 용사와 영용한 전사의 넋

 

<원추리/ 권경업>

 

 

  두 손으로 져보고 싶도록 예쁜 네 얼굴에는 독이 있어서 만질 수가 없다지??


구부정한 샛길 따라

생각지도 않은 옛 친구 떠올리며

혼자웃음 웃는데,

누군가 갑자기 팔을 잡았을 때의

꼭 그런 느낌


여름해가 아직 게을러

애써 그늘 찾지 않아도

그냥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인데,

어느 집 담을 넘는 된장찌개의

꼭 그런 맛깔

 

<능소화/ 최동희>

 

 

 울컥 솟구치다 뜨겁게 타들어가 붉은 재가 되는 꽃심지 처럼~

 

그리울 때마다

돌돌 말아두던 마음

더는 가둘 수 없구나


사무치다 북받치는 가슴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구나


울컥 솟구치는 피

뜨겁게 타들어

재가 된 심지


그나마 흩어질까

또 다시 접어두는 그리움

 

<접시꽃/ 장미숙>

 

 

 당신이 아니면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생애에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시여!
드릴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기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 옵니다

 

<해바라기 연가/ 이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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