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명사찰,석불

700년 만에 바다건너 고향으로 나들이온 수월관음도

머루랑 2010. 11. 18. 13:03

 

  고려시대는 불교가 왕실에서는 물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불화의 제작도 성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벽화 형식의 불화도 많이 제작 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불화는 대부분

  두루마리 형식이며 그나마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은 겨우

  10여 점에 지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수월관음도/ 일본 단잔진자(談山神社) 소장

 

   700년 전 고려시대 불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대부분이 해외로 유출돼 보기가 쉽지 않은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불화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에서 열리는 G20를 기념해 처음으로 '용산국립박물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섬세하고 단아한 형태,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체 등은 독보적인 미적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가이며 고려인의 높은 미적 수준과 고려불교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어 

   당시 문화수준을 엿볼 수 있다.

   고려불화는 작품이 워낙 귀한 탓에 한 곳에서 여러 점을 소장한 경우가 드물다.

   이 때문에 국,내외 소장처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고려불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한국에 빌려주면

   다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작품 운송을 코 앞에 두고 

   출품의사를 철회한 기관도 있었다고 한다.

 

  수월관음도는 여러 수월관음도 중에서도 화려한 금니와 고운 색채가

  잘 살아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히며 재난을 만났을 때,

 

  관음보살을 부르기만 해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법화경'의 '관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을 불화로 표현한 것이다.

 

 

    약사삼전도

 

   △관세음보살상


 관세음보살은 불교의 보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보살 중 하나로,

 석가모니의 입적 이후 미륵이 출현 할 때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을 말한다.


 

   <아미타불>

   서방 정토에 있는부처로 대승 불교 정토불교의 중심을 이루는 부처로,

  수행 중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정토에서 교화하고 있으며,

  이 부처를 염원하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로 간다고 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보살을 말한다. 

   사보살의 하나이며, 세상의 소리를 들어 알 수 있는 보살이므로 중생들이 고통 가운데

   열심히 관세음보살 이름을 외면 반드시 도움을 받게 된다는 보살이다.

 

  <진귀한 고려불화는 한두 점만 직접 보아도 불보살이 된다는 전설속의 불화이다>


 

 

     ▲일본 센소지(淺草寺)가 소장한 수월관음도

 

   일본에서는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라 부르는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고려불화로

   일본 교과서 같은 데서 고려시대 불화, 나아가 고려 문화 전반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작품"이라면서 이번 '고려불화대전'에서도 이 작품이 마스코트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대여하러 나선다고 했을 때, 일본의 불교미술사 전공자들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고 솔직히 우리측에서도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줄 몰랐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주체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공신력 때문에

   까다로운 센소지 사찰 측에서도 많은 고심끝에 대여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센소지 수월관음도는 일본 국내에서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심지어 일본 국내 연구자들도 접근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센소지(淺草寺)가 소장한 수월관음도

 

    일반적인 수월관음도는 바위에 걸터 앉은 모습인 것고 달리,

   은은한 녹색 물방울 모양 안에 서 있는 자세로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 수월관음도는 세로 144cm에 가로 62.6cm로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닌 비단 바탕의

    채색화이며,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고려의 혜허(慧虛)라는 스님이 그렸다는 묵서가 남아있다.

   화면 한가운데 관음보살이 시선을 오른쪽 아래로 향한 채 섰는데,

   오른손에는 버들가지를 들었다. 이를 일본에서는 양류관음도라 부르는 까닭은

   바로 손에 쥔 양류(楊柳) 즉, 버들가지 때문이다.

   나아가 보살 전체를 감싼 신광(身光)이 특이하게도 길쭉한 물방울 모양으로 등장한다.

   수월관음도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선재동자는 합장한 채 보살을 우러러보는 모습으로

   화면 왼편 모서리에 표현됐다.

               


 

    △700년 만에 고향으로 나들이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왜 이 수월관음보살은 버들가지를 들고 있을까? 


   5세기 때 중국 기록을 보면 버드나무(껍질)를 치료제로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즉, 관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뜻에서

   버들가지를 표현하지 않았을까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이 외에도 양류관음은 병고(病苦)를 덜어주는 보살로, 자비심이 많고

   중생의 소원을 들어줌이 마치 버드나무가 바람에 나부낌과 같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는 설명도 있다.

   세상의 병고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많은 중생들에게 버들가지로 감로수를 

   널리 고루 뿌려서 고통에서 덜어주려는 뜻이 담겨있다고도 한다.

 

   어떤 사유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오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크다.

   국외로 반출 되었다고 하여 모두 강탈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 시대 고려불화는 모든 나라에서 서로 구하려고 로비도 했을 것이고

   정상적인 거래나 증정 등 합법적으로 나간 것이 더 많았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외국에 남아있는 문화재나 불화들을 모두 다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다.         

 

   일부 문화재 관련자들의 무지로 인해 불화의 좌,우는 물론 위,아래를 잘라내고

   표구를 해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례도 있는 것을 보면오히려 여태껏 잘 관리하고 온전히 간수해온 

   그들에게 오히려 우리는 머리숙여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