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산성 성벽위로 소나무들이 마치 초병들 처럼 도열해 있네요
전등사 내역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전등사는 단군 신화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사찰 중 하나 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초기에는 진종사라 칭했으며 민족의 역사가 살아있는 강화도에서 1,600여 년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입니다.
기록에는고려 고종 46년(1259년)에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지은 것으로 다시 기록에 등장하며
고려는 1232년부터 1270년 사이에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하면서 진종사는 크게 중창 되었으며,
충렬왕 8년(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합니다.
전등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한다고 하네요.
△남문 주차장
△남문입구
신화와 호국의 정기가 서린 삼랑성(정족산성)
천년고찰인 전등사에 들어 서려면 네 개의 성문 중 하나를 지나야 하는데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이죠~
단군의 세 아들 부여,부우,부소 삼형제가 쌓아서 이름 지어진 산랑성은 산은 지형을 잘 이용해 정족산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으로 길이가 2,300m 정도이며, 동서남북 각 방향에 성문이 있습니다.
전등사 남문을 지나 우거진 숲길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학 두 마리의 조각상이 서있는 다원입구로 들어 서는데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는
마당 한 가운데는 특이한 모양을 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끕니다.
이 나무는 굵은 나뭇가지가 키높이 부분에서 서로 붙어서 하나의 몸체를 이루는대 연리목은 아니고 그저 신기합니다.
△다원 입구의 학 조각상
<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면 고운 소리가 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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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에서는 전통차와 도자기로 빚은 작은 방울 등의 기념품을 팔고 있는데
앙증맞은 자기 기념품의 가격은 11,000원 부터 이고, 전통차는 한 잔에 보통 8,000원을 받고 있는데
잠시 쉬어 가기에 분위가 좋습니다.
△전등사 대웅전 (보물 제178호)
조선시대 중기 대웅전 건축의 전형적인 예로 지어진 전등사 대웅전은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인 팔작 다포집 입니다.
처마 끝이 마치 날아갈 듯 위로 들려 있으며 우아한 느낌과 함께 내부 장식의 화려함이 돋보이는데.
1615년(광해군 7)에 기공하여 1622년에 준공 되었습니다.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대웅보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해진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사방으로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때문이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법당 건물에 생뚱맞게 웬 벌거벗은 여인네 조각상인가 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 조각상이 나부가 아니라 원숭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불교에서 원숭이는 사자나 용,흰코끼리와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호하는 짐승으로 간주하며
나부상이든 원숭이든 그리 중요 하지가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성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화 전등사 대웅전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나부상이라는 의견이 더 많습니다.
사방으로 돌아가며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나부상은
각기 얼굴 표정이나 모습이 서로 다르며 몹시 힘들어 하는 고통을 짊어진 모습입니다.
벌거숭이 나부상에 얽힌 전설
이 나부상(裸婦像)은 벌거벗은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요.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가운데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고
이 때문에 대웅보전도 여러 번 중건 되었으며 그 중 지금의 나부상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말로 추측이 됩니다.
당시 나라안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불사를 하던 중 마을의 주모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불사를 마치면 주모와 혼인하기로 약속하고 그동안 정성껏 모아둔 돈과 일을 하면서 생긴 돈을
모두 주모에게 맡겼는데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어느날 주막으로 찾아가니 여인은 흔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배신하고 떠나간 여인을 원망하며 힘들어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tk를 마무리 했습니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지붕을 떠받치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만들어 졌지요.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주지 스님은 과연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만들어 올려 놓았던 것일까?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랑을 배신한 여인을 징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여인이 대웅전에서 들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들으며 지은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로 살라는 도편수의 불교적 사랑과 염원이 반영된 조각상이 아닐런지...
△전등사에 가시면 대웅전 천장에 새겨진 보물인 아홉마리의 용을 모두 찾아보세요
대웅전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가득 양각해 놓아 이곳이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는 겁니다.
△저 숨겨진 방울을 찾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운이 찾아 온답니다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아홉개의 작은 방울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 부분에
아홉 개의 작은 방울종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종이 동시에 울며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다는데 지금은 불단에나 올라가야 끈을 잡을 수가 있어요~
내부의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과 1880년에 그린 '후불탱화' 와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법화경>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산사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전등사 약사전(보물 제79호)
전등사 약사전은 조선시대 중기의 목조건물로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건물이며
불교 신자들이 병을 고칠 목적으로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곤 하는 곳입니다.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집 계통에 속하며 건립 시기는 대략 1,621년으로 추정됩니다.
△명부전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귀왕 등 모두 29존상이 모셔져 있는데
대개 명부전은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하며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셨을 경우에는
지장전이라고 부르며 죽은 사람들이 49일이 지나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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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
세계문화유산을 만들고 지켜낸 전등사
고려시대 부처의 힘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16년 동안 팔만대장경을 판각하고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세계 최대의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온
강화도는 유서가 매우 깊은 곳입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전등사에서 지켜낸 정족산사고본(1,181책)만이 유일하게
전책으로 남아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정족산사고에서는 실록과 더불어 왕실문서를 보관 하였는데 실록을 보관하던 건물이 '장사각'이고
선원세보를 비롯한 왕실문서를 보관하던 곳이 '선원보각'입니다.
이밖에 보물 제393호인 범종 등도 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우리는 터득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흐르면서 변화하기 때문이죠~
가을가뭄으로 인해 예년처럼 곱지는 않았지만
단풍이 지고 수능시험도 끝난 시점이라 그런지 산사를 찾은 발길들이 눈에 띄게 한산합니다.
그 자리를 단체여행 온 일본 및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신 메꾸어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전등사는 적막강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풍경이었을 겁니다.
일본인의 원래 국민성이 그러한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듯 많은 수의 인원이 함께 했으면서도
큰 소리로 떠들거나 하는 일 없이 하나같이 가만가만 이야기 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 이었습니다.
몇 안 되는 우리네들의 행동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전에도 몇 번 들러 보았지만 볼일이 있어서 강화를 찼았다 다시 찾아간
늦가을의 조용한 산사 풍경은 고향에 온듯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느낌이라 정말 괜찮았습니다.
종파를 떠나서 탬플스테이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문득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신도 모르게 등에 짊어지고 있을
힘들고 무거운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차분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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