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그곳에 가면

숭례문이 불타고 4일 후

머루랑 2011. 2. 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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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기 전의 숭례문 사진(세계적이고 독보적인 빨리빨리 기술로 다시 복원이야 되겠지만, 어찌 옛맛이 제대로 살아 나려나...)  

  

방화 사건은 2008년 2월 10일 설연휴가 끝나던 날 저녁 방화로 인

보 1호인 숭례문이 완전히 타서 무너진 가슴아픈 사건이지요. 

방화범 채종기(당시 69세)는 범행을 모두 시인하고 현재는 구속 수감된 상태이구요.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설연휴 마지막 날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 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1시 54분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모두 붕괴하여 국민께 엄청난 충격을 심어준 사건 이었지요~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소실 사건' 3주기를 맞아서

반성하는 의미로 '화재 4일 후' 찾았던

가슴아픈 현장의 모습을 다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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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어린 고사리 손들을

두 손 모아 합장하게 만들었나요.

우리 모두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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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설연휴가 끝나는 날 저녁,

바로 눈앞에서 불타는 숭례문을 그저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광장앞의 저 소나무들은 

개를 푹 숙인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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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설치한 투명 보호막 너머로

철거를 위한 철골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검게 그을려 버린 상처는

처참하고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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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다비식이 거행되어 버린 현장...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오래 전에

이미 숭례문은 운명을 달리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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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놓아 두고 간

추모 꽃다발은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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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가림막 벽면을 도배한 대자보와 

군데군데 무리를 이룬 인파는 방화를 사전에 막지못하고

 

화재 진압도 초기에 어설프게 한 무능한 정부와 관계기관을 성토하는 글 들과

원성으로 숭례문광장 둘레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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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린 고사리 손들을 두 손 모아 합장하게 만들었나요.

우리 모두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합니다.

 

아직도 저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른인 제가 많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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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막 벽면에는

격려의 글과 더불어 원성의 글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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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을

질타하는 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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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실감에 가슴아파 하는 많은 글들로 

복구현장 가림막을 돌고 돌아서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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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마련해 놓은 조촐한 젯상엔 무궁화꽃이

한송이, 한송이 올려지며

비명에 스러진 숭례문의 넋을 달래주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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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 선 참배객 사이엔 유독 가족단위의

참배객이 많아서 보는이의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 솟아 오르는 그 무엇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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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모아 합장하고 향사르는 고사리 손끝에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도 영원히 사그러 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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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엔 생명이 있다는데,

역사와 함께 600년을 넘게 살아온 숭례문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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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에 스러진 넋을 달래는 추모행사는

해가 저물도록 광장 앞에서 종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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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타버려  

몇 줌의 재가 된 후에 알았네  

600년 넘게 그 곳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심히 지나치며 알지 못했던 모습 

아,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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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현장을 찾은 이들도

엄숙한 추모 행사장 분위기에 젖어 들어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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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광장앞의 이 노송은

온 종일 소리죽여 가슴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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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무관심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엎드려 참회하면 무거운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질까...  

 

 

 

혹자는 말합니다.

광화문 복원공사로 인하여 불을 다스린다는 광화문앞의 해태상 두 개를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아서 숭례문이 화마의 피해를 입었다고...

 

조선 초기에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왕궁인 경복궁을 세우면서,

저 멀리 남쪽 앞에 보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하여 광화문 앞에

불을 먹고 산다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 상을 세웠다고 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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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원은 어떻게...   

일제가 훼손한 좌우 성곽 총 69m를 복원하고,

지반은 일제 때 변형되기 이전인 조선 중·후기를 기준으로 복원하되

현재 지표면보다 1.6m 아래에서 드러난 조선 전기의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층은

일부를 노출해 강화 유리를 덮어 전시 한다고 합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지난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소실된 지 만 3년을 앞두고

문화재청은 이 같은 복원 공사 계획을 밝혔습니다.

 

숭례문의 좌우 성곽은 동쪽 남산 자락으로 53m, 서쪽 대한상공회의소 방향으로

16m를 복원하고, 복원될 숭례문의 지반은 이전보다 30~50㎝ 낮아지는데

이는 일제 때 성토된 부분을 걷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6월 발굴 조사 중 현재 지표보다

1.6m 아래에서 확인된 조선전기 유구층은 유리를 덮어 전시 한다고...

문화재청은 유구를 노출하는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홍예문(무지개 모양 통로) 주변이 될 것' 이라고 하네요.

 

화재로 인한 소실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숭례문 인근에 화재 잔해를 포함해

숭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며

화재 3주년 인 2월 10일 현장 설명회를 열고 대장간 철물제작, 돌 다듬기 및

목재 다듬기 등 전통기법 복구 장면을 시연 한다고 합니다.

 

 

 

숭례문 사건을 계기로  

 

전통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세계적 자랑거리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들을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