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구인사~여의생문안골~민봉~신선봉~늦은맥이재~상월봉~국망봉~비로봉~천동리
(1,362m) (1,389m) (1,394m) (1,421m) (1,439m)
소백산 철쭉제가 시작되면 많은 인파로 등산로가 넘쳐날 것 같아서
미리 한적하게 소백산을 나뎌오기로 하고 동서울에서 단양 구인사로 가는 첫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것도 주말이 아닌 평일에 말입니다.
구인사에서 신선봉을 지나 늦은맥이재 까지 오르는 구간은 산행 거리가 길고 사고가 종종 발생되는
험한 지역이라 현재는 정식 등로가 아닌 아는 분들만 알음알음 다니는
출입이 제한된 구간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선봉에서 장기판을 펼쳐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을 소백산 신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길을 꼭 올라야 하기에 다소 무리를 하기로 합니다.
구인사까지는 동서울에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다소 먼 거리이기 때문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붙혔나 했는데 버스는 벌써 단양읍이 가까워진 듯 남한강변을 달리고 있네요.
아무생각 없이 차창밖을 주시 하는데 유명한 도담삼봉의 모습이 언뜻 보여서
서부영화의 총잡이가 권총을 뽑아들 때 보다 좀 더 빠르게(?) 배낭에서 디카를 꺼내 셔터를 한 번 누르자마자
이내 시야에서 도담삼봉의 모습은 사라져 버립니다~♬
천태종 본찰인 구인사에서 마지막 건물을 지나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임도가 나타나는데 임도를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무심코 임도를 한참 오르니 다시 구인사 마지막 건물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빽을 해야 당연하나 절에서 가꾸는 철조망이 쳐진 산채밭을 지나 계곡을 미끄러지며
네 발로 기어서 힘들게 능선에 오르니 길이 전혀 없습니다.
다시 길도 없는 계곡 숲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며 보수없는 알바를 계속 합니다.
아니, 보수가 전혀 없는 알바는 아니지요.
이것은 절대 비밀인데 '산신'이 준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살다보면 실수가 때로는 행운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아주 가끔은 있잖아요~♪
오늘이 바로 그날 인가 봅니다.
가시에 긁히며 알바한 보상은 충분히 받았으니 덤불을 헤치고 내려가는 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고
그렇게 40분 이상을 내려오니 다시 최초의 임도와 연결이 되고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밭둑의 지천인 씀바귀도 휘파람을 불며 뜯습니다.
임도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오늘의 두 번째 실수를 합니다.
사방댐을 막은 곳을 넘으면 바로 여의생문안골로 신선봉 올라가는 산행의 출발점인데
여기서 좌측의 임도를 따라 1km를 더 진행 하였다가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되돌아 오니
본격적인 소백산 산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몸이 지쳐버렸습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게곡은 천연의 원시적 모습 그대로 살아있고
등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산나물의 대표격인 손바닥만한 연한 소백산 취나물이 지천입니다.
처음에는 한 봉지만 따려고 했는데 그만 욕심이 발하여 여기서 능선을 하나 더 넘는 바람에
또 1시간 30분 이상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동서울행 6시40분 막차를 놓치는 세 번째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지요~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 자연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잘 살아 있습니다.
자연보호라는 미명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지...
능선이 가까워지자 멧돼지가 훍고 지나간 너른 경사면에 무리지어 핀
자홍색의 큰앵초꽃이 산객에게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장마철도 아닌데 벌써 버섯도 보이네요.
산나물을 뜯느라 길도 없는 사면을 오르내리느라 힘이 지쳐올 때쯤
산철쭉이 곱게 꽃을 피운, 등로가 제법 뚜렷한 능선상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힐수록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아래는 신록의 숲으로 완전히 색칠 됐는데 위로 갈 수록 하늘이 훤하게 열리는 것은
아직 나무의 이파리들이 다 자라지 않아서 입니다.
사방으로 조망이 틔여진 능선의 연두빛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귀는 소음으로 고생을 해야합니다.
훈련 중인 공군전투기들이 고도를 낮춰 낮게 비행을 하면서 내는
전투기 특유의 쇠가 찟어지는 듯한 제트기 소음은 오늘 소백산 신선봉 산행의 옥의 티 입니다.
폭탄 터지는 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이지 마치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왼쪽 끝 신선봉과 멀리 상월봉과 국망봉이 보입니다.
△국망봉 능선 남쪽으로 오늘 가야할 목적지인 비로봉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네요
△비로봉 끝으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도 흐릿하게 조망이 되구요~
철쭉의 변종인 흰철쭉도 보이고
신선봉이 가까워 지면서 육산인 소백산에서 드물게 바위군도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드디어 신선봉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길목엔 커다란 입석이 길 안내를 합니다.
신선봉의 장기판바위 입니다.
소백산 봉우리 중 유일하게 암릉으로 이뤄진 신선봉 정상에는 명품이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장기판인데, 오랜 세월 폭풍우에 노출된 장기판은 이제는 짐작으로만 사방으로 그은 선이 가늠이 될 뿐
희미하여 모르고 간다면 거의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여기서 저와 내기 장기를 두기로 약속한 신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제가 약속 시간에 두 시간 가까이 늦게 왔으니 아마도 화가 나서 그냥 가버렸나 봅니다~
그게 아니면, 귀를 찟는듯한 전투기 소음에 심기가 불편해진 신선이 아예 나오지 않았거나...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상월봉과 국망봉능선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길게 이어진 앞으로도 더 걸어야 할 길이...하늘엔 여전히 전투기가 사진마다 찍혔습니다~
<이륙하려는 전투기를 닮은 바위> |
<이륙하려는 전투기를 닮은 바위-2> |
드디어 구인사에서 올라오는 거리와 백두대간상의 고치령에서 올라오는 산행거리가
거의 엇비슷한 두 능선이 서로 만나는 '늦은맥이재'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오후 4시에...
앞으로도 걸어야할 거리가 13km 이상 남았으니 발에 땀이 나도록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상월봉 오르는 길 양쪽으로는 철쭉이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같이 진한 빛은 아니지만 소백산철쭉 특유의 연분홍으로 천상의 화원을
꾸밀 준비를 바삐 서두르고 있습니다.
얘네들은 아직도 소백산 철쭉제가 이미 끝난줄도 모르고 있나봐요~ ^0^*
△서서히 꽃망울을 터트리기시작하는 상월봉 아래 철쭉밭
고운 철쭉이 만발한 저 평전을 걷는 이들의 들뜬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이 걷는 즐거움이 얼마나 좋은지~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인데,
그러나 마음을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나 자신도 문득 산이 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경험을 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초반에 허비한 시간들로 인해 마음이 바빠져서 평소의 그 여유로운 모습으로
널널한 산행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평상시라면 맨위 저 바위에 올라 쉬면서 자연과 대화를 시도 했을텐데...
△지나온 신선봉(중앙우측) 능선에 햇살이 산그림자를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국망봉 오르는 길은 순한편인데 이미 몸이 지쳐서 이런 고운길도 힘들게 느껴지네요~
△지나온 상월봉과 가야할 국망봉(아래)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참 많이도 걸어 왔는데...
△멀게만 보이는 저 비로봉까지 앞으로 가야할 거리도 만만찮은데 이미 해는 지고 있습니다~
구인사에서 신선봉을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산행은 산행거리도 결코 짧지 않은 중장거리 산행인데
하물며 초반부터 알바를 두 번이나 하고, 또 산나물을 뜯는다고 산을 하나 넘으며
모두 두 시간 가까이 허비하고 나니, 이제 국망봉인데 시간은 이미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습니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을 거쳐서 단양이 가까운 천동리로 내려 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꼼짝없이 하산 도중에 날이 저물어 헤드랜턴을 사용하게 생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긴 산행을 하면서 오늘 단 한 사람의 산행객은 물론 사람의 고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산행내내 훈련하는 전투기 소음에만 시달렸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평일이고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 유명한 철쭉제가 열리는 소백산에 이렇게 인적이 하나도 없다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이상한 것이 맞습니다.
이 늦은 시각까지 아직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분명히 비정상적인 사람임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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