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이 좋아서>/수도권

천보산 (화암사지)

머루랑 2013. 4. 24. 12:42

 

        △회암사 진달래 꽃길 

 

      산행코스:회암사지~회암사~천보산~장림고개~수리봉~칠봉산(돌봉)~투구봉~석봉~깃대봉~매봉~발리봉~봉양사거리

                                                                                                                <506m>

 

       꼭 한달만의 산행,

        봄마중을 하려면 보다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이제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봄기운이 완연하기에

        서울에서도 북쪽인 동두천 쪽으로 달려가 봅니다. 

 

        도봉산역에서 국철로 갈아 타고 덕정역에 내리니 건대입구에서 근 한시간이 소요 되는데

        천보산을 가려면 역사 앞에서 다시 78번 마을버스를 타고 10여분 걸려 회암사지 입구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전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이내 회암사지터 이고 회암사 까지는 다시 1km...  

 

 

       △초롱등이 내걸린 양주 회암사지입구

 

       △지금도 유적지 발굴 작업이 한창인 회암사지터

 

       △회암사지 당간지주 (향토유적 제13호)

 

       만여 평의 드넓은 대지 위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이라곤 저 당간지주와 부도탑 외에

       세월에 넘어져 내리는 석축과 주춧돌 밖에 보이지 않는다.  

 

 

         △회암사지터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는

      기록에 위하면 당시의 회암사는 260여칸에 이르는 매우 큰 규모의 사찰로 한 때는 3,000여명의 승려가 머물렀다 한다.

      고려 충숙왕 지공() 창건하고 나옹() 공민왕 중건 하였으나 1800년대에 없어졌다.

 

      고려말에 지공대사가 대대적으로 절을 중창하고 그의 제자인 나옹화상이 절집 살림을 맡으면서 많은 신도들이 모여 들었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자 나옹의 제자였던 무학대사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1800년대 폐사된 후 땅속에 묻혀버려 시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었는데

      1997년부터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연차적으로 발굴이 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조선 최대의 사찰이 어느날 갑자기 역사속에서 사라진 것은 아마도 '승유억불정책' 탓이 아닌가 한다.

        성리학을 숭상했던 조선 왕조가 불교를 억압하고 탄압한 정책....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 도움을 받아 조선을 개국할 당시만 해도 승불정책이 유지되어 왔지만 

        그후 태종이 정권을 잡은 다음부터 불교 세력이 문벌귀족과 결탁하여 조선왕조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성리학자들의 모함과 왕조의 불안감에서 나온 정책이 바로 '승유억불정책'이다.

 

 

         △회암사지 부도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회암사지 부도탑

      상,중,하 모드 삼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 받침돌에 구름에 휩싸인 말을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고윗받침돌은 8부신장과 덩굴무늬로 장식한 후

      그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는데 윗받침돌과 둥근 탑신의 몸돌 사이에는 별도의 돌로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은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느린 U자형을 이룬다. 꼭대기에는 여러 머리장식들이 포개져 있다.

 

 

 

 

        △오색연등이 아치를 이룬 회암사입구

 

         △회암사 요사채 건너편 산자락으로 무르익는 봄이 예쁘다

 

 

        △회암사경내

 

         △회암사를 둘러싸고 무리지어 피어 있는 진달래빛이 참 곱다

 

        △새로이 중창 중인 대웅전 뒤로 삼성각이 위치하고 좌측으로 등산로 입구

 

         △무학대사비 오르는 길목의 진달래밭

 

         △무학대사 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무학대사

     무학대사는 고려말·조선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자초이고,무학은 그의 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그의 스승이 되어 도읍지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그 후 회암사에서 머물다가 금강산의 금장암이라는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높직한 4각 받침돌 위에 비 몸체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결한 모습인데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하늘을 떠 받들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를 향하고 있는게 특징이다.

       비문에는 대사의 일생이 적혀 있는데 특히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선사와 나옹선사를 만나 그들의 제자가 된 일

       한양천도에 큰 역할을 한 일 회암사에 두 스승의 묘탑을 세운 일 등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태종 10년(1410)에 왕명을 받들어 변계량이 비문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 두었다 하나

        순조 21년(1821)에 파괴 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다시 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태조 이성계가 수도생활 한 곳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인 1328년에 승려 지공(指空)이 창건한 사찰로

        그의 제자인 나옹이 불사를 일으켜 큰 규모의 사찰로 탈바꿈 하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으며 왕위를 물린 후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절터의 동쪽 능선 위에 지공과 나옹 그리고 무학의 사리탑이 남과 북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쌍사자석등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로 붙여서 만들었으며 그 위의 중간받침돌은 쌍사자를 두어 신라 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서 입체감이 없고 엉덩이가 밑에 닿아 부자연스럽다.

 

      윗받침돌에는 8개의 연꽃모양을 새겼는데 불을 밝혀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은 2개의 석재를

      좌 우에 놓아 그 간격으로 생긴 2개의 공간이 창의 구실을 하고 있다.

 

      지붕돌은 두꺼우며 처마밑이 반원모양으로 들려 있고 경사면은 네 귀퉁이가 두툼하게 도드라져 뚜렷이 표현되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근 돌 위로 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있다.

 

 

 

        △무학대사 홍융탑(보물 제388호)

 

 

    무학대사 홍융탑(보물 제388호)

 

      부도의 형태는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의 바닥돌 위에 받침 부분인 기단이 놓이고 탑신과 머리장식 부분이 포개져 있는 모습이다.

      기단의 아래·윗돌은 연꽃모양의 돌이고 가운데돌은 배가 불룩한 8각의 북모양으로

      각 면에는 모양이 서로 다른 꽃조각이 도드라져 있다.

 

      탑신은 몸돌이 둥근 모양으로 표면에 용과 구름이 가득 새겨져 시선을 모은다.

      용의 머리와 몸, 비늘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있게 보이고 구름무늬가 한층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지붕돌은 8각으로 처마부분에는 목조건축을 흉내낸 모양들이 새겨져 있고 경사는 급하며 추녀 끝은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둥근 돌 하나만 올려놓아 간소화된 형태를 보인다.

      조선 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이 부도는 규모가 웅대하고 모양도 가지런하다.

      무학대사묘비의 기록으로 미루어 1407년에 건립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의 북쪽 능선 위에 지공 나옹의 승탑과 함께 서있는 이 부도는 무학대사의 묘탑이다.

        둘레에는 탑을 보호하기 위한 난간이 둘러져 있다.

 

        회암사의 주지이기도 했던 무학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성계의 꿈을 풀이하여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이야기와 한양천도에 관련된 설화 등은 특히 유명하다.

 

 

        △무학대사비와 지공선사 부도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탑으로

        회암사에 서 있는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3단으로 올렸는데 그 중 가운데 받침돌만 배가 볼록한게 특징이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탑신은 둥근 공모양에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이 두툼하며 처마의 각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머리장식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은 모든 부재가 4각으로 3단을 이루는 받침돌 위에 등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과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화사석은 앞뒷면 2곳에만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부도에서와 같이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데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들이다.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나옹선사 고려 후기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으로 오대산 상두암에 오래 머물렀고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고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크게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부도는 8각을 기본형으로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3단을 이루는 기단의 가운데 받침돌은 배가 불룩한 북모양을 하고 있으며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조각없이 간결한데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려갔고 지붕돌 위로는

        하나의 돌로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석등은 4각을 기본형으로 3단의 받침 위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화사석은 앞 ·뒷면에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처마는 느린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 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

        보주(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웅장하고 화려했던 회암사의 옛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회암사지에서 역사공부도 했으니

        이제는 오늘의 본업으로 돌아가 천보산을 열심히 올라야죠.

 

        진달래가 수줍은듯 줄지어 곱게 피어있는 그 고운 길을 따라서요~

 

 

         △마치 호접란 같아요~

 

        꽃은 자기가 꽃이란걸 알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얼마나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지를~~

 

 

      △산아래 진달래는 피어나고 있지만 나뭇가지 새순은 아직 보이지 않아요

 

        △양주신도시 공사가 한창인 들판 너머로 멀리 사패산과 불곡산이 보이고

 

        △양주 불곡산

 

         △암릉 조망대에서 내려다 본 회암사

 

       △회암사

 

        △저 봉우리를 지나면 정상이 보여요

 

       △로프가 매어진 암릉을 오르며...

 

        △회천동일대

 

        △회천동

 

        △풍경

 

       △우측 회암령에서 넘어온 천보산맥

 

         △기암이 서있는 풍경

 

        △신도시 공사로 어수선해 보이는 풍경

 

        △가운데 높은 곳이 칠봉산

 

         △천보산 미인송

 

         △무용하는 미인송

 

        △천보산 정상

 

       △동쪽으론 포천시내

 

       △미인송이 있던 지나온 봉우리

 

 

        천보산 정상을 지나 조금 내려오면 해룡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부터는 칠봉산 아래까지 MTB코스와 나란히 가다 갈라지기를 반복하는 너른 등로라

         걷기는 보다 수월하지만 산행하는 재미는 반감됩니다~

 

 

        △장림고개 육교

 

        △장림육교의 MTB조형물

 

        △수리봉

 

       △양주 신도시

 

 

        군벙커가 자리한 수리봉에 서면 멀리 도봉과 사패산, 양주의 불곡산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좋은 바위 아래로는 군부대안 시설물까지 훤히 노출이 되어서 조심스럽네요. 

 

        몇 년 전에 작고한 故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말에 의하면

        이미 남한에는 5만 명이 넘는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있었기에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칠봉산정상

 

       △정상엔 쉬면서 조망을 즐기에 그만인 벤치도 놓여 있어요

 

       △정상 맞은편으로 해룡산

 

          △왜 진달래바위 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고~

 

        △말봉에도 벤치가...

 

        △매봉,깃대봉,석봉을 지나 하산할 능선이...

 

        등산로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서 무엇인가를 갈잎 사이에서 찾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을 발견하곤 나물이 벌써 나왔냐고 물으니 산쑥을 뜯고 계신다고 합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뜯을 만큼 쑥이 자라지도 않았는데 어느 세월에 저 큰 자루를 다 채우실지~ㅎ

 

        나도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칼을 꺼내 쑥 몇 닢을 뜯다가 금새 포기했어요.

        너무 작아 손에 잡히지도 않아서~

 

 

        △봉우리가 모두 일곱개 여서 칠봉산 이라는데 큰 의미는 없다

 

 

        △투구봉

 

        △등로에서 약간 벗어난 칠성바위

 

        △임금이 꿩사냥 할 때 매를 날렸다는 매봉

 

        진달래,

        내가 그의 이름을 나즉이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바람에 흔들리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조림지역

 

       △조림지 끝으로 동두천시내

 

       △진달래가 한창인 하산길

 

        △발리봉

 

        △봉양동 건너로 불곡산과 도락산

 

         △오늘 진달래마저 없었다면 칠봉산 하산길이 얼마나 허전했을까~

 

 

 

 

 

 

 

         천보산은 큰 기대를 안고 가면 아니 됩니다.

          높이가 고작 500여 미터 밖에 안되는 낮은 산으로 칠봉산 능선에 바위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바위가 많은 불암산이나 북한산 등 서울 주변의 산들을 떠올렸다간 급실망 이죠.   

 

          그러나 산세는 비록 높지는 않지만 멀리 도봉산에서 사패산을 거쳐서

          북으로 북으로 흘러 내리는 산군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괜찮습니다.

          하산길을 회암사지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면 좀 더 여유롭게 역사공부도 할 수 있고...

 

 

          모처럼만의 산행이라 그랬던가

          올봄들어 처음으로 눈을 맞춘 진달래 눈빛이 그렇게 고운줄 오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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