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가을,겨울 時

가을,가을에 읽는 가을詩 20선

머루랑 2008. 10. 22. 20:34

             <가을밤/도종환, 山門에 기대어/송수권, 내 속의 가을/최영미,익어가는 가을/이해인,

             갈잎/도종환, 가을 날/도종환, 대추/도종환, 가을노트/문정희, 낙엽/도종환, 가는 길/

             이문재, 삼각산/이성부, 바람이 오면/도종환, 벼/이성부, 가/정호승, 단풍드는 날/

             도종환, 누이의 마음아 나를/김영랑, 가을에는/최영미, 다시 가을/도종환, 바위/유치환,

             열매 도둑 단풍 도둑/하종오 등>    

  

 불을 끄고 누워도 꺼지지 않는 가을밤, 등잔불같은 그대 생각...

 

  

<가을밤/ 도종환>

 

그리움의 물레로 잣는

그대 생각의 실타래는

구만리 장천을 돌아와

이 밤도 머리맡에 쌓인다.

 

불을 끄고 누워도

꺼지지 않는

가을밤 등잔불같은

그대 생각

 

해금을 켜듯 저미는 소리를 내며

오반죽 가슴을 긋고 가는

그대의 활 하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의 활 하나

 

잠 못드는 가을밤

길고도 긴데

그리움 하나로 무너지는 가을밤

길고도 긴데

 

 

 

  

   대성문 처마끝에 붉게 매달린 가을...

 

<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꺽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날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날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바람이 불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

 

<내 속의 가을/ 최영미>

 

높고 푸른 하늘이 없어도

뒹구는 낙엽이 없어도

지하철 플랫폼에 앉으면

시속 100킬로로 달려드는 시멘트 바람에

기억의 초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흩어지는

 

창가에 서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

 

따뜻한 커피가 없어도

녹아드는 선율이 없어도

바람이 불면

오월의 풍성한 잎들 사이로 수많은 내가 보이고

거쳐온 방마다 구석구석 반짝이는 먼지도 보이고

어쩌다 네가 비치면 그림자 밟아가며, 가을이다

담배연가도 뻣뻣한 그리움 지우지 못해

알미늄 샷시에 잘려진 풍경 한 컷,

우수수

 

네가 없으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

팔장을 끼고

가 ~ 을!

  

 

 

       길위 갈잎의 노래 하나...

 

<익어가는 가을/ 이해인>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 하여라

 

말이 필요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산벚나무의 가을 합창을 들어 보았는가...

 

<갈잎/ 도종환>

 

아픈 몸을 끌고 물가에 나오다

익을 대로 익은 느티나무잎이

햇살을 달고 황홀하게 지는데

먼저 진 갈잎 몇 장과

나란히 물가에 눕다

뒤따라갈께요 뒤따라갈께요

 

물에 떠 흘러가는

갈잎 향해 던지는 소리인지

곁에 누운 내게 하눈 말인지

마른 입술 달싹이는

사각사각 갈잎의 목소리

 

  

 

 

   담쟁이네 마을의 가을 걷이 풍경~

 

                                                               <가을날/ 도종환>

 

딸아이 손을 잡고 성당에서 오는 길

 

가을 바람 불어서 눈물납니다.

 

 

담 밑에 채송화 오손도손 피었는데

 

함께 부른 노래 한 줄 눈물납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땐 단풍! 

  

<가을 노트/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녂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나무에서 떨구어지는 순간, 신분은 낙엽으로... 

  

<낙엽/ 도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기 네 가슴에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 가자

 

허공에 찍혔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 다시 떠나는 수 천의 낙엽

낙엽

 

 

 

 

       불타오르는 단풍은 삼각산 바위마저 붉게 물들이고 있다

 

 

 <삼각산/ 이성부>

 

가까이에 있는 산은

항상 아내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내 것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재미있는 산

더 많이 변화를 감추고 있는 산

가까이에서 더 모르는 산

기래서 아내 같다

거기 언제나 그대로 있으므로

마음이 놓인다

 

어떤 날에는 성깔이 보이고

어떤 날에는 너그러워 눈물난다

칼바위 등걸이나 벽이거나

매달린 나를 떠밀다가도

마침내 마침내 포근히 받아들이는 산

서울 거리 어디에서도

바라보기만 하면 가슴이뛰는 산

내 것이면서도 내가 잘 모르는 산

 

 

 

 

  대남문오르는 구기동 길의 가을은 온통 노랗다     

   

                                                               <가는 길/ 이문재>

 

가는 길에 인행잎 구른다

저무는 시월 소리 내면 읽히지 않고

저녁에도 부는 바람 가끔씩 있어

긴 그림자 버짐 같은 먼지 일으킨다

한 입 시린 무거나 배춧속 같은

그날들도 큰소리로 읽기엔 부끄럽다

 

가는 길 갈수록

가슴 설렐 일 드물 것인데

가는 길 어느새 가파르다

지는 노을 산 그림자

한 짐씩 어둠의 푸른 데로 옮겨 앉는다

이 밤 한 번 그리움에 져주자

나 아직도 나에게 들킬 일 남아 있는가

 

  

 

 

  이 가을 숲속엔 소리없이 내리는 낙엽비 소리만 있을뿐이다~

 

<바람이 오면/ 도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봄에는 철쭉꽃이, 이 가을엔 단풍꽃이...

 

                                                                   <벼/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 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애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단풍은 단풍일 뿐...돌아보지 마라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가을/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저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라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가을이 밟히는 아품을 그대는 아는가...

 

<단풍드는 날/ 도종환>

 

버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훌륭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대추/ 도종환>

 

지쳐 있는 내게 다가와

몰래 하나씩 먹으라고

김선생이 손에 쥐어 준

빠알간 대추 한 줌

 

함께 단식하는 동료들 생각에

차마 못 먹고

주머니에 넣어 둔 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몸 못가누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와 바라보는

얼어붙은 겨울 하늘 위로

빠알간 대추 몇 알

 

 

 

 

        초록은여름내 지쳐, 붉게 멍이 들고...

 

<가을에는/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 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 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어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북한산성의 아름다운 가을을 한번이라도 보았는가?  

 

<다시 가을/ 도종환>

 

구름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덜 관심을 보이며

높은 하늘로 조금씩 물러 나면서

가을은 온다

차고 맑아진 첫새벽을

미리 보내놓고 가을을 온다.

 

코스모스 여린얼굴 사이에 숨어 있다가

갸옷이 고개를 들면서

가을은 온다.

오래 못 만난 이들이 문득 그리워지면서

스님들 독경소리가 한결 청하해지면서

가을은 온다.

 

흔들리는 억새풀의 몸짓을 따라

꼭 그만큼씩 흔들리면서

 

너도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혼자 그렇게 물으며

 

가을은 온다

 

 

 

 

 바위는 붉은 단풍이 부럽고, 단풍은 자신을 태우는 아픔이 없는 바위가 부럽다!

    

<바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의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쪽으로 깨뜨려 져도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가을,가을이 진다! 앞에도 옆에도 가을, 가을이 지고있다!  

 

  

 

<열매 도둑 단풍 도둑/ 하종오>

 

며칠만에 돌아와 집안을 둘러보니

풀들이 밟혀 작은 길 생겨나 있다

그 새로 난 작은 길 가보니

은행나무 아래서부터

감나무 아래로 가서 멎었다가

대추나무 아래로 가서 멎었다가

뒤란 둔덕까지 가서 멎어 있고

나무마다 가지에 열매 하나 없다.

 

우리 집에는 대문이 없는데도

올해도 누가 집뒤에 트럭 대놓고 들어와

대추와 감과 은행 싹 털어 싣고 갔다

단풍 들 무렵이면

내가 집 나가는 짓거리 알고 있는

이웃이 와서 한 짓거리 아니면

해마다 때 잘 맞출 순 없는 법이지만

협의를 품지 않기로 한다.

 

나도 산천에는 대문이 없다는 걸 알고

함부로 이곳저곳 드나들며

나무들이 잎에 맺은 색깔들 눈독들여 와서

마음에 한 자리 깔았으니 피장파장 아닌가

그 새로 난 작은 길 발자국 맞춰 걸어보니

내 걸음나비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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