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가을,겨울 時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외)

머루랑 2008. 12. 6. 13:59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눈 내리는 날/ 박장락, 겨울의 꿈/ 곽재구, 눈/ 김종해> 

 

  사랑하는 사람들 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눈 내리는 날/ 박장락>


눈 내리는 날
그대와 걷고 싶어라
인적없는 한적한 산길 찾아서
아무도 오지 않는 하얀 눈길에서

그대와 나의
사랑의 발자국 남기며
끝없이 펼쳐지는 눈 속을 헤매다
그대의 체온을 느끼며
힘든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대와 걷고 싶어라

눈 내리는 날
그대의 사랑을 느끼며
한적한 카페에서
서로 얼굴 마주보며
그윽한 찻잔에 그대의 향기를 느끼면서

눈꽃처럼 녹아내리는
그대의 영롱한 눈빛을
내 가슴에 담아
그대와 둘이서
끝없는 눈길을 걷고 싶어라.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 젖혀고...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겨울의 꿈/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텐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춤을 익혀야겠다
바람에 들판의 갈대들이 서걱이듯
새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흩날리듯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 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한 칸 구들의 온기와 희망으로
식구들의 긴 겨울잠을 덥힐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채찍처럼 달려드는
겨울의 추억은 소중한 것
쓰리고 아프고 멍들고 얼얼한
겨울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 젖혀야겠다
죽은 새소리 뒹구는 벌판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눈이 내릴 동안에는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눈/ 김종해>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좋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대하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