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간다는 것은/이외수, 세월은/조병화, 편지/서정윤, 섣달 그믐날/김남주>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리지 못해도
덕행을 쌓은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멀리 퍼진다.
<살아 간다는 것은/ 이외수>
살아 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된다
하루에 한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을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 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나무를 심을 때
일정 간격을 유지 하는 것처럼
건강한 인간 관계를 위해서는
존중 할 거리가 있다.
<세월은/조병화>
떠나가면서
기쁨보다 슬픔을 더 많이 남기고갑니다
봄 여름이 지나면서
가을을 남기고 가듯이
가을이 지나가면서
겨울을 남기고 가듯이
만남이 지나가면서
이별을 남기고 가듯이
사랑이 지나가면서
그리움을 남기고 가듯이
아, 세월 지나가면서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빈 자리를 남기고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애쓰고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바친다.
<편지/서정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먼 하늘 노을지는
그 위에다가
그간 안녕이라는 말보다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자.
그대와 같은 하늘아래 숨쉬고
아련한 노을 함께 보기에 고맙다.
바람보다,
구름보다 더 빨리 가는
내마음, 늘 그대 곁에 있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언제나 남아 있다는 말로
맺는다.
멀리 갈 적에는
함께 가는 짝과 친해야 하며,
자기집에 있을 적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가장 친해야 한다.
<섣달 그믐날/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걸
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모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시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봄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詩 휴게실> > 가을,겨울 時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외) (0) | 2008.12.06 |
---|---|
사람들은 왜 첫 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까? (0) | 2008.12.02 |
시월의 시(류시화 외) (0) | 2008.11.16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정희성 외 3) (0) | 2008.11.16 |
온 들녘이 온통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0) | 2008.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