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문태준,윤보영

이외수 시모음(중)

머루랑 2009. 5. 12. 13:39

  <꽃, 수변, 만추, 가을빛, 기다림, 고양이, 봄눈, 여름, 노을, 조각잠2> 

 

 

  

꽃/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젖은 기적 소리가
멀리서 왔다.

 

 

 

 

 

 

 

수변/

 

벽 속에도
벽 밖에도
담장에도 굴뚝에도
달마만 보였다.
구들장에도 서까래에도
하늘에도 땅에도
그리운 별은 또 어떻고.
버혀도 버혀도
달마는
비처럼 내렸다.

話頭를 놓았다.
달마도 벽도
간 곳이 없다.

 

 

 

 

 

 

  

만추/

 

영혼이 없는 육체를 보았습니까.
그는 영혼을 호주머니 속에 넣어둡니다.
마른 풀씨처럼
불을 붙이면
연기도 없이 지워질 몸은,
차곡차곡 접어서
서랍 속 흰 빨래 옆에 가지런히 놓아둡니다.
가끔은 주머니를 털고
술잔 속에
담배연기 속에
우리들 손등 위에 가만히
그의 영혼을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서랍 속으로 들어가
이 세상과 분리됩니다.
우리가 그를 만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을빛/

 

밥이 보다 요긴했던 시대
밥 때문에 상처받던 시대
사랑도 밥 앞에서는
맥 못 쓰던
그런 날에도.
흰 쌀밥으로만 보이던
원고지 빈 칸
뜯어먹으며 쓴 말
  - 밤마다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만큼
    사랑이라 적으면
    눈시울 젖은 채로 죽고 싶어라

 

 

 

 

 

 

기다림/

 

어느 날은 속삭이듯
배꽃나무 그늘로
스미고 싶다던 그대여.
스며 그에게로
가닿을 수 있다면.
터진 꽃망울의 속살로
피어날 수 있다면.
한 꽃나무에서 다른 꽃나무로
흐를 수만 있다면

 

 

 

 

 

 

      

 고양이/

 

벽에 검둥산 하나
그려넣고
밤마다 入山하는 그대를
적멸이라 부르랴.

 

 

 

 

 

 

 

봄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고요
영혼들만
새벽 안개등으로 빛나는 날
샘밭에 가면
강물처럼 흐르는 축축한
혼들의 행렬이 보이지요
안개는 슬픈 사람들의 넋이야
배추밭 뚝에서 젖은 채
흐느끼는 그대를
만나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름/

 

샘밭에 가면
남루한 옷차림의
노을이,
남루한 사랑이
펼쳐진다. 공복인 그대가
어루만지던 원고지의
빈 칸처럼.
그리움도 사랑도 시든 지
오래.
옛사랑은 노래가 되지 않는다.

 

 

 

 

 

 

 

노을/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 하나를 찍노니
세상 사는 이치가
한 점 안에 있구나.

  

안개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수은등 밑에 서성이는
안개는
더욱 슬프다고
미농지처럼 구겨져
울고 있었다.

 

 

 

 

 

  

조각잠2/

 

은유의 마을로
가고 싶다.
그곳에선 내가
소나무고, 민들레고
바람이다.
그대는 별.
사무치는 그리움되어
너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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