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편지/ 이향아, 능소화/ 오세영, 능소화 감옥/ 이정자, 능소화/ 이원규>
꽃빛깔이 고와서 울던 내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능소화 편지/ 이향아>
등잔불 켜지듯이 능소화는 피고
꽃 지는 그늘에서
꽃빛깔이 고와서 울던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싸웠어도 내가 먼저 말을 걸 것을
여름이 익어갈수록 후회가 깊어
장마 빗소리는 능소화 울타리 아래
연기처럼 자욱하다
텃밭의 상추 아욱 녹아 버리고
떨어진 꽃빛깔도 희미해지겠구나
탈 없이 살고 있는지 몰라
여름 그늘 울울한데
능소화 필 때마다 어김없이 그는 오고
흘러가면 그뿐 돌아오지 않는단 말
강물이야 그러겠지
나는 믿지 않는다
능소화야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다지도 아름답더냐...
<능소화/ 오세영>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다지도 아름답더냐.
체념의 슬픔보다 고통의 쾌락을 선택한
꽃뱀이여,
네게 있어 관능은
사랑의 덫이다.
네 부드러운 몸둥이
다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가슴으로,
칭칭 감아 올라
마침내
낼룽거리는 혀로
내 입술을 감쌀 때
아아, 숨막히는 죽음의 희열이여,
배신이란 왜 이다지도
징그럽게 아름답더냐.
아낌없이 제 향기, 제 몸 내어주는 능소화의 꿀을...
<능소화 감옥/ 이정자>
능소화 꽃술에 머리를 쳐 박고
염천을 능멸하는 운우지정의
꿀벌 한 마리
꿀의 주막에 빠져 있다
나부끼는 바람과 햇살
불의 사막을 걸어서라도
가 닿고 싶은 매혹과 도취
능소화 꽃잎 속은
달디단 열락의 감옥이다
아낌없이 제 향기 제 몸 내어주는
능소화의 꿀을 따고도
한 점 상처도 흔적도 없는 저 자리가
오늘 내게는 신전이다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가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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