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봄, 여름 詩

능소화 편지(이향아 외)

머루랑 2009. 7. 7. 16:09

  <능소화 편지/ 이향아, 능소화/ 오세영, 능소화 감옥/ 이정자, 능소화/ 이원규>

꽃빛깔이 고와서 울던 내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능소화 편지/ 이향아>

    

등잔불 켜지듯이 능소화는 피고

꽃 지는 그늘에서

꽃빛깔이 고와서 울던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싸웠어도 내가 먼저 말을 걸 것을

여름이 익어갈수록 후회가 깊어

장마 빗소리는 능소화 울타리 아래

연기처럼 자욱하다

텃밭의 상추 아욱 녹아 버리고

떨어진 꽃빛깔도 희미해지겠구나

탈 없이 살고 있는지 몰라

여름 그늘 울울한데

능소화 필 때마다 어김없이 그는 오고

흘러가면 그뿐 돌아오지 않는단 말

강물이야 그러겠지

나는 믿지 않는다

 

 

 

 

 

능소화야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다지도 아름답더냐...

 

 

 <능소화/ 오세영>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다지도 아름답더냐.

체념의 슬픔보다 고통의 쾌락을 선택한

꽃뱀이여,

네게 있어 관능은

사랑의 덫이다.

네 부드러운 몸둥이

다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가슴으로,

칭칭 감아 올라

마침내

낼룽거리는 혀로

내 입술을 감쌀 때

아아, 숨막히는 죽음의 희열이여,

배신이란 왜 이다지도

징그럽게 아름답더냐.

 

 

 

 

 

 아낌없이 제 향기, 제 몸 내어주는 능소화의 꿀을...

 

 

 <능소화 감옥/ 이정자>

 

능소화 꽃술에 머리를 쳐 박고

염천을 능멸하는 운우지정의

꿀벌 한 마리

꿀의 주막에 빠져 있다


나부끼는 바람과 햇살

불의 사막을 걸어서라도

가 닿고 싶은 매혹과 도취

능소화 꽃잎 속은

달디단 열락의 감옥이다


아낌없이 제 향기 제 몸 내어주는

능소화의 꿀을 따고도

한 점 상처도 흔적도 없는 저 자리가

오늘 내게는 신전이다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가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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