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그곳에 가면

야간산행이 된 칠불암 가는 길

머루랑 2012. 7. 7. 09:00

 

  경주 남산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의 진산(鎭山)입니다.

     금오산(466m)이라 부르는 남산은 낮으막한 야산이고 금오산에서

     남쪽의 고위산에 이르기까지 산 전체를 통틀어 경주 남산이라 부릅니다.

 

     경주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산골짝과 능선을 따라 수없이 산재해 있는 자연박물관으로

     그 대부분이 석탑과 석불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애불이 많은게 특징입니다.

 

     2000년 12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되어 보호 받고 있는 남산에는

     수많은 불상과 석등,석탑 등을 포함하여 모두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있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죠.

 

 

      

         △이미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산행코스 : 통일전 휴게소~국사~굴바위~탁자바위~부석~사자봉~금오산~이영재~칠불암 삼거리~

 

      신선암~칠불암~용소골~통일전 휴게소 (10km, 야간산행 : 4시간) 

 

 

 

         이 서투른 아내가 멀리 지방에 꼭 내려가야 할 일이 두 군데나 생겼다며 

        내게 운전기사 역활좀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떠난 경주와 포항 당일 일정...

 

        먼저 경주에 들러서 일을 보고 오후 늦게 포항으로 간 다음, 다시 경주로 넘어오면서 

        직장 선배가 귀향해 정착한 감포읍에 들러서 차를 얻어마시고 다시 경주로 오니 낮의 길이가 일년 중 가장 길다는

        7월 초 이지만 느새 뉘엇뉘엇 남산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해가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항상 마음에 담고만 있었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오지 못했던 경주 남산...

 

        오늘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거리가 제일 가까운 칠불암만을 번개 같이 다녀오기로 하고

        통일전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신발을 등산화로 갈아신고 급히 서두릅니다. 

        시간은 이미 여섯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는데...

 

        서출지를 지나 마을 중간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오르니 등산통제소가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하니 포석정 주차장과 금오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길레

        지레짐작으로 우측의 금오산 방향을 따라 오릅니다.

 

        이게 착오지요. (칠불암은 남쪽에 있는데 점점 서쪽으로 가고 있으니...)

        아니 이미 순환도로를 들어설 때부터 잘못된 것 이었지만~ 

 

        그런데 올라갈수록 길이 좁아지며 사람의 흔적도 희미해져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요.

        주차장에서 벌써 1,5km나 올라왔는데...

 

 

 

        △부석바위

 

       얼마전 싸이트에서 칠불암을 다녀온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 풍경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궁리를 하다가 가느다란 목책에 써있는 긴급 전화번호를 발견하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어 물어 보는데

       공교롭게도 부서로 배치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은 신입 여직원이라 남산의 지리를 전혀 모른다네요~ㅠ

 

       그러면서 손전화 번호를 알려주면 남산의 지리를 잘 아는 직원을 찾아 연결해 주겠다고...

 

       날씨도 무더운데다 긴장도 되니 이마에선 구슬땀이 이마를 적셔 오는데도

       갈 길이 바빠 잠시 쉬면서 땀을 닦을 마음에 여유도 없네요.

       벌써 숲속에는 어둠이 밀려오니 시작 하는데 갈 길은 알 수 없으니~

 

       얼마후 공단의 남자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길래 목책에 써있는 고유번호와

       금오산 1.8km남았다는 이정표를 알려 주어도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그대로 오르면 금오산 정상이 나오고

 

       정상에서 다시 칠불암을 가려면 임도를 따라서 몇 시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냥 내려오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탁자바위 (얼마나 여유가 없었는지 올라 보지도 못했답니다. 물론 탁자에는 오르면 안 되지만~)

 

      그러나 경주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했는데 여기서 포기하고 그냥 내려 간다면 머루랑이 아니죠~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었을 텐데도 아내는 저만 믿고 묵묵히 발걸음을 따라 옮깁니다.

       점차 속도를 높혀 가면서요.

 

       애초부터 산행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배낭도 없이 차에 싣고 다니는

       등산화만 챙겨신고 올라왔기에 마실 물과 과일 몇 개가 든 아내의 작은 배낭을 넘겨받아 숨이 턱에 차도록 

       힘이 들지만 쉴 생각도 못하고 능선을 오르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사진을 담으며

       모두 다 살펴보았을 탁자바위, 부석, 마애불 등 바위군들을 빠르게 그냥 지나칩니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탁자바위 능선 

 

       얼마나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 휴대한 물도 제대로 마시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고

       앉아서 참외를 깍아 먹을 여유도 없이 먹어가며 걷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로 바쁜 하루의 연속입니다.

 

      뭐 이후의 고생한 이야기는 많지만 우리 부부의 추억으로 남겨둘 겁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유희좌상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보물 제199호)

 

        으로 갈라지는 칠불암 삼거리에서 어둠이 내려 어두워진 신선암 방향으로 

        미끄러운 암릉을 따라 조심하여 내려가니 넓게 시야가 터진 암반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우측의 절벽길을 조심하여 돌아가니 발아래로 수백길의 낭떠러지 위에 위치한 신선암이 나오네요.

 

        옛 서라벌의 너른 벌판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 높은 벼랑 끝 절벽 암면에

        바로 오늘 힘들게 찾아온 신비스러운 모습의 신선암 보살상이 우릴 반겨 맞아 줍니다.

 

        커다란 보리수잎 모양의 감실을 파내고 구름 위에 의자를 놓아 그 의자 위에 편안히 앉아서 

        오른손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설법인을 하고 하늘을 유유히 노니는 모습의 보살상 입니다. 

 

        보살상 앞에 앉아 내려다 보면 아득한 아래 세상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 후손들이 사는 세상의 

        껌벅이는 작은 불빛만 보일뿐 입니다~ 

 

 

 

        △간절함을 담은 여인의 기도속에 옛 서라벌의 밤은 깊어만 가고...

 

        해넘이도 끝나고 어둠이 내려 앉는 초저녁이라 

        훤한 대낮에 보는 그런 장엄한 풍경은 아니지만 너른 들판을 가운데 두고 멀리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들은 오히려 대낮에 바라보는 것보다 하늘 위에 솟아 있는 봉우리들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니 내 몸도 부처와 하나되어 하늘에 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길지의 환경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옛사람들의 높은 혜안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온 생명을 다하여 부처의 밝은 세계를 동경하는 소망과 정열이 없이는 이러한 천혜의 장소를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이러한 절벽 끄트머리 암면에 목숨을 건 위험한 작업을

        무릅쓰고 부처를 새길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겁니다~   

 

 

      바로 이곳이 불교에서 말하는

     다음 세상에 부처가 되어 하강 한다는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 하늘' 아닐까... 

 

 

 

        △인등 불빛만 빛나는 칠불암 마애불상군 앞 불단

 

        같은 어둠속 저 뒤에는 분명히 마애불상군이 위치하고 있을턴데 

         불단 앞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아도 바로 2미터 뒤에 있을 불상군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 입니다.

 

         짐작으로 방향을 잡고 카메라 후레쉬를 몇방 터트려 어렵게 아래사진 두 장을 얻었습니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봉화골 정상 아래 위치한 매애삼존불과 사방불을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부르는데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영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가사는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잘 표현되어 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본존불 앞에 있는 사방불은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모두 다르게 하고 있으면서 보살상이 본존불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은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방불

 

 


 

       준비도 없이 늦게 올라간 경주 남산 칠불암...

 

       비록 길을 잘못들어 졸지에 예정에 없던 야간산행으로 네 시간에 걸쳐 10km를 한번도 쉬지도 못하고

       내내 걸었지만 우리 부부에겐 잊지못할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경주 남산에서 얻어 왔네요.

 

       때론 계획한 일들이 틀어져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멋진 추억이 되기도 하지요.

       오늘 경주 남산의 칠불암을 찾아가는 길이 바로 그랬습니다.

 

       혹시나 하여 헤드랜턴 대신 중형 랜턴을 하나 휴대하고 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마 그 랜턴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무리하게 야간산행을 시도 할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요. 

 

       경주 남산국립공원 담당자에게 조금 유감이라면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시각에 길잃은 산행객이 산속에서 전화로 길을 물어 왔다면

       한번쯤 안전하게 하산을 완료 했는지 확인하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 담당자는 퇴근도 해야 하고

      조난 당하면 119구조대 몫이니까 뭐~~

 

 

        불빛에 놀란 커다란 개구리들이 숲속으로 달아나며 다리에 마구 부딛혀 오자 

        이에 놀란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허리에 매달려 올 때, 

        모처럼 연애하던 풋풋한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행복했습니다~

 

        고맙다.

        개구리야~♬ 

 

         앗싸    완전이뻐

 

 

 

        ※ 자동차를 세워둔 통일전 휴게소에 도착하니 이미 10시를 넘어서고 있는데

            다시 서울까지 네 시간을 달려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