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용대리~백담사~길골~저항령~황철봉~황철북봉~미시령
◈산행일시 : 2017년 10월 13일(금) 10:00~18:20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가을이 한걸음 더 성큼 다가왔다.
8월초에 산행을 한 후로는 여태껏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무르익어 가는 계절과 함께 여행에서 늘어난 체중도 조절하고
또한 저물어 가는 가을의 설악이 보고 싶어졌기에 즉시 버스표를 예약하고 다음날 첫차로 출발하기로 한다.
물론 고운 단풍은 이미 지고 없을 것이지만 단풍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니 만큼 단풍철이 끝나고 오히려 오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오늘도 나홀로 조용히 떠나는 길골 비탐지 산행이다.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 도로변의 가로수 마가목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간다.
▲백담마을
▲백담사 주변에 남아있는 단풍도 그리 곱지 않고 그나마도 이미 지고 없다.
▲저항령까지 이어지는 길골은 모두 열두 번에 걸쳐 계곡물을 건너야 한다.
▲사람의 발자국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길골 계곡엔 이름없는 작은 폭포들이 수없이 이어진다.
▲길골에서 마주한 나름 예쁜빛의 단풍이다.
▲하늘을 가리는 숲속에 위치한 길골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파란 하늘이 반가워 머리를 들어 하늘을 찍어댄다.
▲파란 하늘과 단풍이 어우러진 완전체 오방색이다
▲이런 풍광을 보려고 오늘 이곳에 왔다
▲고운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이 실제보다는 감흥이 덜하다~
▼숲이 활활 불타오르는...
▲잘가거라! 내년 가을에 다시보자...
▲오늘 열두 번째로 개울물을 건넌다
▲계절이 긴 여행길을 떠나고 있다
길골은 모두 열두 번에 걸쳐서 계곡물을 반복해서 건너야 하는 여름철 계곡산행으로 적격이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계곡 양쪽을 빼곡이하늘을 가리며 자라고 있어 한여름에도 했볕이 거의 들지 않는
지역인데 가을에는 나뭇잎이 떨어져 그렇잖아도 희미한 길이 보이지 않아 길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열두 번의 개울물까지 잘 건너서고 나서 그만 탈이 나고야 말았다.
저항샘을 얼마 앞두고서 그만 생각지도 않은 알바길로 들어선 것이다.
여름철 숲이 우거져 있을때는 희미하게나마 그래도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낙엽들이 모두 떨어지고 길을 덮으며
숲속이 훤히 들어나면서 어디가 길인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 나름 방향을 잡고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온갖 덤불이 앞을 가로막으며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위성지도를 확인하니 등로를 벗어 나지는 않았는데
길은 아니고 이리저리 헤매다 저항령 방향으로 무작정 덤블을 헤치며 밑으로 기다 위로 타고 넘으며 넘어지기를 몇 번...
그렇게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스마트폰과 함께 체력이 방전되고 말았다~^^
온갖 덤불이 정글처럼 우거진 덩굴숲을 힘들게 뚫고 저항령 안부로 올라서니 좌측으로 4미터 옆에
저항샘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길을 바로 옆에 두고서 생으로 길을 내면서 오른 것이다.
어제 오후 미시령에서 올라와 오늘까지 이곳에서 숙영을 할 것이라는 한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휴식도 없이
알바로 허비한 시간을 보충하고자 황철봉을 향해 쉼없이 오르는데 좀처럼 속도가 나지를 않는다.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니 갑자기 동해쪽에서 짙은 구름이 밀려오면서
용오름 현상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대간능선 반쪽을 휘감는다.
▲건너편의 마등봉은 피어오르는 구름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북쪽 하늘은 저렇듯 파란빛인데...
▲저항령 안부를 짙게 드리운 구름이 이제는 황철봉을 향해 기어오른다
갑자기 불안감이 파도처럼 엄습해 온다.
꼭 작년 이맘때 칠형제봉을 홀로 등반하다가 오늘같이 맑은 날씨가 갑자기 돌변하면서
이슬비가 내리는 짙은 안개속에 길을 잃고서 100폭 상단으로 떨어져 비박 장비도 없이 영하에 가까운
10월 설악의 밤을 바위틈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설악구조대에 조난신고를 한다는 아내를 설득하고 만류하며 바위틈에서 보낸 2016년 10월,
설악의 밤은 정말 미치도록 춥고 길고도 무서운 밤이었다.
동해에서 밀려오는 짙은 구름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며
대간능선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용대리방향은 이렇듯 맑음인데...
▲오늘 하늘을 낮게 흘러가는 뭉게구름이 심상치가 않다
▲변화하는 하늘을 계속 주시하며 나무 그늘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밀려오려는 구름과 밀어 내려는 바람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황철봉은 아직 푸른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드디어 버텨오던 대간능선의 마지노선의 벽이 깨지는 순간이다
▲마치 산불이 난듯 구름은 거세게 능선을 휘몰아친다
▲시야가 확보될 때 빠르게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정상은 아직 운무에 점령당하지 않았다
황철봉에서 정상 등로는 진행하는 방향에서 볼 때 1시 방향이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 보이는 10시 방향으로 진행하면 틀림없는 알바 길일 것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100%~
▲황철봉을 넘어서자마자 짙은 짙은안개가 등로를 덮으며 시야를 가린다
▲간간이 구름사이로 햇살도 비추면서 참으로 이상한 오늘 날씨다
▲잠시 겉히는가 싶다가도 다시 길을 덮는...
▲멋진 수채화지만 오늘은 전혀 반갑지가 않아...
▲북쪽으로는 순간순간 파란 하늘도 보인다
▲황철북봉
황철북봉에서는 방향표지석이 가리키는 서쪽(왼쪽)의 너덜지대로 내려서야 한다.
간혹 잘못된 리본이 매달려 있기도 한 우측(동쪽)의 능선길로 방향을 잡았다가는
끝도 없는 알바길이니 초행길인 사람은 많은 주의가 요망되는 곳 중 하나이다.
몇 년 전 여기서 무심코 뚜렷한 우측길로 내려섰다가 두 번에 걸쳐서 밀림같은 숲을 뚫고 너덜지대 두 개를
지나서 북봉에서 내려오는 너덜지대 하단에서 간신히 등로와 합류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이제는 북서쪽인 미시령 방향에서도 짙은 구름이 밀려 올라온다
▲북봉아래의 대 너덜지대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집중해가며 내려간다
▲짙은 운무에 휩싸인 마가목 열매가 손짓을 하는데도 나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짙은 안개가 앞을 가로막았다 트였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너덜을 다 내려온 줄 착각하고 그만 이곳에서 한참을 쉬었는데 이것도 실수였다.
앞으로 짙은 안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빨리 미시령과 울산바위 서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미시령 갈림길을 확보한 다음에 쉼을 해도 했어야만 했다.
당초 계획은 예전대로 울산바위 서봉을 올랐다가 미시령 아래 폭포민박으로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초반에 알바하며 소진한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그보다는 짧아지는 가을 햇살에 날씨마저
등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뒤덮은 짙은 운무에 미시령으로 탈출을 하기로 한 것이다.
▲너덜에서 맘놓고 쉬는 동안 이렇게 개이기도 한다
▲북봉의 긴 두번째 너덜을 내려간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모든 지역이 짙은 안개에 뒤덮이기 시작한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데 주변이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주변은 많이 어두운데도 사진은 밝게 나온다
미시령과 울산바위 서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찾지 못해서 어두워진 산길을 뛰다시피
빠르게 이동하는데 주변이 어두워 도무지 방향감을 잡을 수가 없다.
위성지도를 확인하니 아직 삼거리에 도착하지 못한 거 같아 좀 더 내려가다가 지도를 확인하니
아뿔사 지도에서 가리키는 삼거리에서 서봉으로 350~400여 미터나 지나쳐 내려 오고야 말았다.
다시 올라간다 해도 짙은 안개와 어두워진 날씨에 희미한 등로에 낙엽까지 덮여있는 상황에서 미시령 등로를
제대로 찾을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헤드랜턴에 의지해 서봉까지 능선을 타고 내려가 목포민박이나 계조암 방향으로
내려간다고 해도 산행거리가 너무 멀어 혼자서 야간산행을 하기에는 지친 몸으로 위험도 따르고 해서
한동안 망설이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다시 되돌아 올라가기로 한다.
날씨는 좀 더 어두워져서 이제는 헤드랜턴을 써야 할 지경인데 아직 길은 찾지도 못하고...
작년 10월 중순,
칠형제봉에서의 조난 직전까지 간 사건이 생각나 정신이 번쩍든다.
낙엽이 모두 지고 특정 지형지물이 없는 상태에서 삼거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야간에 대간하며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찾으려 이리저리 휘젓고 다녀 숲속의 사방이 모두 길 같다.
이제는 방향감각 마저도 희미해 지려는 순간, 오늘 두 번째로 하늘의 힘을 빌려 보기로 한다.
캄캄한 하늘에다 대고 "나를 도와 달라고" 큰소리로 외쳤더니 나의 외침을 하늘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신기하게도 위성지도상에서 내가 미시령방향으로 올바르게 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성지도가 가르키는 곳이 맞는지 몇 번에 걸쳐서 확인을 하고 또 확인하고...
이렇게 오늘도 작년에 이어 또 대자연에 큰 신세를 지고 말았구나.
▲어둠이 짙게 내린 18:20분 미시령에 도착
미시령에 도착해 속초와 원통 중 어느 곳으로 갈지 고민을 하다가
전에 가끔 이용하던 원통 개인택시를 콜했는데 지금 군인 손님을 태우고 부대로 가고 있기에
다른 기사분을 소개해 주겠단다. 그런데 여기서 또 착오가 생기고 말았으니 오늘은 시작부터 끝까지 탈의 연속이다.
미시령 정상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어 앉아서 택시를 기다리기가 뭐해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미시령 옛길을 따라
헤드랜턴을 켜고 1.5km 정도를 걸어 내려가는데 택시기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휴게소에 도착해 있는데 손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미시령을 올라가는 빈택시를 전혀 보지도 못했는데?
먼저 전화를 받은 기사분이 그만 착각을 하신 거였다.
나는 분명히 구 미시령휴게소라고 말했는데 전해준 기사분은 한계령휴게소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만 것.
현재 시각이 18시 51분인데 어떻게 원통에서 동서울행 막차인 19시30분 버스를 탈 수 있단 말인가.
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 40km, 미시령에서 다시 원통까지 27km 합 67km의 거리를 달려서 제시간에 버스를 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기사분이 책임지고 7시 30분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해본단다.
그리고 얼마 후
뒷좌석에 나를 태운 택시는 고속도로도 아닌 46번 국도를 무려 시속 180km를 넘나드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
출발 3분여를 남기고 원통터미널에 도착하여 동서울행 막차를 어렵게 타고서
하루동안 많은 사연들이 연이어 벌어졌던 고난속의 길골~황철봉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오늘 하루 또 대자연의 신세를 졌으니 이걸 어떻게 값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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