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휴게실>/가을,겨울 時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머루랑 2008. 10. 29. 17:02

               <시월/ 황동규, 가을에/ 김정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눈이 시릴 듯 파아란 하늘과 대비된 굴참나무 단풍>

 

 

<시월/ 황동규>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아늬,

석등(石燈)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기나긴 가뭄끝에 내린 단비가 물러간 하늘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가을에/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를 황톳길을 그리워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일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세계가 사라져가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상처,그리고

 그대의 생활일 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져버리고

그대가 세상에 빼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 차린다 해도

그대는 내앞에서 행여

몸둘 바 몰라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 수 없는 어떤 생애 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 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

 

 

 

 

 

                    <누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一生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