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및 위치 - 비학산(450m),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법원리 초리골
◈ 산행일시-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매우 추운날씨)
◈ 산행코스- 법원도서관앞~초계탕집~암산(팔각정)~무장공비숙영지~은굴~395봉~대피소~
비학산~장군봉~385봉~매바위~승잠원~법원도서관 (17km : 5시간 40분 소요)
◈ 교 통 편 - 지하철 3호선 불광터미널에서 법원리행 31번 버스(1시간 30분),
의정부 가능역 건너편에서 금촌행 32번, 32-1번 시외버스(요금 2,000원-45분 소요)
○ 비학산은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폭파하기 위해 침투를 하다가 첫번째로 숙영을
하던 중 땔나무를 하러 올라온 우씨형제 등에게 발각되어 신고되는 바람에 더욱 유명해진 산이다.
△하산길 승잠원위 능선에서 바라본 암산(팔각정)
1968년 1월 17일 23시 북한군 제124군 부대 소속 김신조 외 무장공비 30명은 남방 한계선을 넘어
고랑포에서 서남쪽으로 3.5km지점에 위치한 미군 제 2사단의 방책 경계철책을 뚫고 침투하여 파평산을 넘어
밤새워 비학산까지 달려온 다음 19일 낮에 초리골 뒷산인 삼봉산에서 첫 숙영을 하였다.
△암산 오름길의 낙엽송 군무
법원도서관앞 좌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2~3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초계탕집앞에서 개울을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비학산 능선산행이 시작된다. 낙엽송이 우거진 된비알을 힘들게 오르면 능선에 이르고
또다시 바위로 이루어진 급경사지대 난간을 잡고 오르다 보면 작은정자 하나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이 봉이 바로 암산이다.
△특별할 것도 별로없는 비학산 능선에선 이런 모습도 반갑다
△경기도 북쪽인데도 불구하고 능선에는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암산에서 부터 북쪽으로 이어지는 말발굽 모야의 타원형 능선에는 눈도 내리지 않아서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산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영하17도가 넘게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더 춥게 느껴지며 귓볼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이 아리다.
△두루뫼박물관 쪽에서 올라 온다면 이곳까지 1시간 가까이 시간이 단축된다.
암산에서 비학산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길은 오르내림이 매우 심하여 초보자들은 지치기에 딱 좋다.
가뿐숨을 고르고 조금 걸으려 하면 또 시작되는 오름길, 다시 내리막길...
불규칙하여 도저히 산행리듬을 타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다.
△김신조숙영지(무장공비들이 숙영했던 곳에는 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1968년 1월 17일 저녁 11시경 고랑포 서남쪽으로 침투한 31명의 무장공비들은 산악지형을 따라 파평산을 넘어
이곳까지 어둠속을 은밀히 이동을 한 다음, 밤에 다시 서울로 이동하기 위해서 삼봉산자락
양지바른 암석지대 부근에서 임시로숙영을 하던 중,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서 올라온
초리골에 사는 우씨(당시 21세) 형제 등 4명에게 그만 발각이 되고 말았다.
공비들은 침투시 조우하는 민간인들은 무조건 살해하여 암매장 하도록 교육을 받았는데 왠일인지
이날 무장공비 조장은 북쪽의 본부에 이들의 처리를 물었으나 돌아온 암호 내용을 해독할 수 없었던 조장는
팀원들에게 이 나무꾼 형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견을 물었고,
죽이자는 의견과 포섭하여 살려 보내자는 두 개의 의견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마침내 조장은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풀어서 우씨 형제에게 건네주며 회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신고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려와서 반드시 보복을 할 것이라며 협박한 후 살려보냈다.
(결국은 이 실수로 인하여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폭파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중에 해독된 암호문의 내용은 즉시 원대복귀 였다고...
△저 봉오리 좌측아래 양지바른 곳에 공비숙영지가 있다.
△공비들이 철책을 뚫고 침투한 곳에 만들어 놓은 모형(연천군 장남면 반정리에 있다)
△소나무가 우거진 된비알길
김신조 숙영지에서 무덤 하나를 지나면 소나무가 우거진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야한다.
아래 숙영지 이정표에서 숙영지를 돌아본 다음 이곳을 오르면 원래의 주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삼봉산 전경
우측의 작은 봉우리가 김신조일당이 숙영을 했던 곳이다.
숙영지에서는 법원리 일대가 훤히 조망되며 바로 아래로는 초리골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유사시 양쪽 능선으로 탈출로도 용이하게 확보가 된 지역임을 알 수가 있다.
△은굴
1960년대 중반까지 은을 채광하던 곳으로 대형 매몰사고가 발생하여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빈번히 발생하는 침투 무장공비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김신조사건 이후
군부대에서 입구를 아예 콘크리이트로 봉해 버렸다.
△암산에서 시작하여 정상, 장군봉을 거쳐서 매봉으로 내려가는 종주길은 커다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낙엽송숲 사이로 보이는 비학산 정상(왼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395봉에는 고라니 사냥을 나온 엽사들이 길잃은 사냥개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대피소
비학산 정상을 가려면 대피소에서 우측으로 500m를 더 가야하며 계속하여 장군봉,
매바위쪽으로 진행을 하려면, 정상을 밟은 후 다시 대피소까지 500m를 되돌아 와야만 한다.
(대피소에서는 취사를 할 수도 있다)
△비학산(450m)정상
정상에서는 감악산과 파평산,칠봉산,노고산 등이 시원하게 조망이 되고 쉬어가면서
중식이나 간식을 들기좋게 나무의자와 테크가 설치되어 있다.
비학산 정상의 표지석은 군사용 벙커위에 세워진 것으로 아래는 전시에 쓸수 있도록
난방용시설 등이 갖추어진 1개분대 이상이 주둔할 수 있는 요새로 만들어져 있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좌측의 높은 봉우리가 장군봉이고 소나무가 자라는 바위가 있는 곳이 장군봉 전망대이다
급경사길로 이루어진 비학산 정상을 갔다가 조심하여 내려온 다음, 대피소까지 되돌아온 후
우측 장군봉 방향으로 향한다. 비학산 정상은 좌측으로 치우쳐 있어서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능선이 고운 하산길
암산에서 김신조숙영지, 은굴을 지나 비학산 정상까지 이르는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서 지치기 쉬운데 반해
대피소에서 시작되는 장군봉, 매바위로 이어지는 하산로는 사진과 같이 비교적 순하며
평탄해서 별로 힘들지도 않고 산행시간도 훨씬 적게 소요된다.
장군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385봉을 지나면 매바위와 법원2리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에서 매바위쪽 길은 좌측으로 급하게 휘어지면서 마치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드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이정표에서 느낌상 주 능선이라고 생각되는 우측 방향으로 내려가면
산행을 시작했던 초리골 입구가 아니라 법원2리가 나온다.
△산길에서 만난 동네 견공들~
고라니똥이 무수히 밟히는 순한 능선길에서 길게 그림자를 만들며 지는 석양을 즐기며 조용히 걷는데
갑자기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녀석때문에 순간적으로 많이 놀랐다.
처음에는 머리 모양만 보고 어린고라니 녀석인줄 알았는데 가만히 바라보니
빨간목줄을 한 커다란 누렁이 녀석이다.
△먹을 것 앞에서는 견공 체면도 없다
순간적으로 녀석들도 놀랐는지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내가 자세를 낮추어 앉으면서 손을 내밀고
이리오라고 하니까 누렁이녀석이 경계를 풀고 서서히 다가오는데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꼬리까지 흔들어댄다.
민가에서 많이 떨어진 이곳까지 녀석들이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제 주인을 기쁘게 해주려 고라니를 사냥하러??
배낭에서 빵을 꺼내어 조금씩 떼어주니 그제서야 검둥이녀석도 쭈삣쭈삣 다가온다.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비학산을 산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심심하던 차에 이녀석들을 데리고
놀다가기로 마음을 먹고 한손에 빵을 들고서 '앉아' '일어서'를 반복하니
먹이 때문인지, 훈련이 된 녀석인지 곧잘 따라서 한다~ㅎㅎ
이 순간만은 내가 너의 주인이당~
△매바위 전경
△매바위에서 바라본 장군봉(가운데 뾰족한 봉우리)
△매바위와 근린공원 갈림길의 이정표
동네 강아지 두 마리는 이곳까지 나를 배웅하러 따라오다가 되돌아갔다.
△멀리 파평산과 군레이다기지
△김신조 소나무(?)
△승잠원으로 하산하기 직전 북쪽으로 바라본 전경(가운데 뾰족봉이 숙영지가 있는 삼봉산이다)
△지붕을 영지버섯 모양으로 치장한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는 범바위찻집
△버스정류장 직전 법원도서관에서 바라본 풍경
외롭지 않게 이웃에 나란히 자리를 잡은 까치들의 안식처 모습은 동짓달 해넘이도 끝나가는 저녁풍경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평화롭고 여유있게 느껴진다. 추운날씨 탓에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는지
촘촘히 엮어진 그물같은 나뭇가지에는 주인들의 흔적은 보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둥지 안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